빛으로 그린 세상
- 경기도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 한낮의 햇살이 따사롭다. 길가에 얼어있던 흙도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벚나무 가지에는 털옷을 입은 새눈이 얼굴을 내민다. 얼어붙어 있었던 호수도 녹기 시작한다. 가운데 부분부터 얼음이 녹으면서 잔잔한 물위로 나무와 숲과 하늘이 비쳐 보인다. 나무와 하늘뿐만 아니라 주변의 빌딩 숲마저 그 너른 품으로 품어주던 호수공원에도 그렇게 봄이 다가오고 있었다.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 때문인지, 가벼운 운동복 차림을 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호수를 끼고 보행자 도로를 산책하는 노부부, 조깅을 하는 젊은이, 자전거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 등, 모두에게서 활기찬 기운이 느껴진다. 호숫가 갈대밭에서 제법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을 아빠가 사진에 담는다. 또 노랗고 빨간 장난감 자동..
- 서울시 성동구 서울숲 세상이 온통 하얗다. 도시의 스산한 거리도 회색 콘크리트도 모두 하얗게 덮여 있다. 밤새 내린 눈이 고단한 도시를 푹 감싸 안은 듯하다. 거리에 눈을 잔뜩 이고 달리는 자동차와 눈에 반쯤 가린 간판들이 정겨워 보인다. 잠시 꿈이라도 꾸는 듯, 을씨년스럽던 도시의 풍경은 밤새 동화 속 하얀 나라로 바뀌어져 있었다. 가지가 휠 정도로 눈을 잔뜩 지고 있는 나무들이 간간이 눈발을 흩뿌린다. 입구에 마중을 나온 듯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먼저 오는 이들을 반긴다. 아침부터 나와서 눈 덩이를 굴리는 아이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얼굴에도 행복한 미소가 묻어난다. 이 곳이야말로 도시 속의 행복한 동화나라일까. 하얀 눈밭 이곳저곳에는 눈사람들이 웃고 서있다. 눈 덮인 ‘서울숲’을 찾..
-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하늘공원 울창한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걷는다. 맑은 아침 햇살이 내리비치는 길가에는 하얀 개망초 꽃이 소복하게 피어있고, 철 지난 유채꽃 위로 흰나비가 팔랑거린다. 조깅을 하며 지나쳐가는 사람들에게서 활기찬 아침 기운이 느껴진다. 상쾌한 오솔길 풍경. 하지만 쉼 없이 들려오는 차 소리는 이 곳이 서울 도심의 한복판임을 실감케 한다. 하늘공원과 강변북로 사이의 메타세콰이어 숲길은 1Km 남짓 되는 거리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드물지요. 허리가 아파서 마라톤을 시작했는데 거의 매일 이 곳에 와서 뜁니다.” 김명동(47)씨는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푹신한 흙의 감촉이 특히 좋다고 한다. 강아지를 데리고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로 달려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에선 한결같이 여유가 묻어나온다. 도심 ..
푸른강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강변 언덕 위에는 옥수수밭 을 일구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보인다. 일터로 향하는 농부들의 발걸음에 시골길은 아늑하다. 그러나 그 아래 강변에는 소총을 든 북한군이 눈을 번뜩이고 있다. 강은 숨을 멈추고 있었다. 중국지린(吉林)성 허룽(和龍)현 한 조선족 마을과 함경북도 무산군을 가르는 두만강 변. 식량을 구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는 북한 여인과 그녀를 돕는 조선족들이 10여분 간 벌인 '대탈출'의 장면이 본사 특별 취재반에 의해 목격되었다. 지난달 17일 낮 12시 15분. 조선족 청년1명이 폭 30여미터 강 건너편에 있는 북한군 병사 2명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건너오라'고 조선족청년이 외치자 이들은'비가 많이 왔어. 물살이 세서 못가'라며 손을 내저었다. ..
굶주림에 지친 북한이 ‘벌거숭이 공화국’으로 급속히 전락하고 있었다. 북한 당국이 ‘주체농법’이란 미명아래 옥수수, 감자 등을 심기 위해 ‘다락밭’을 개간하면서 북녘땅 전역에 걸쳐 산불을 내는 것을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족한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수입하기 위해 백두산은 물론 두만강, 압록강변의 수십년생 아름드리 원시림을 대대적으로 남벌하고 있었다. 남양, 삼봉, 회령, 무산, 삼장, 혜산 등 무역거점에서 하이관(海館)다리를 통해 중국쪽으로 넘어오는 목재운반 트럭만해도 하루 평균 30∼40대씩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취재팀이 두만강 최하류인 팡촨(防川)을 출발해 백두산을 거쳐 압록강 최하류인 단둥(丹東)까지 3천리를 종주하는 동안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1천4백여㎞에 이르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