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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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터널 끝나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겠지…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5. 8. 11:09

 

“조심하세요. 어두우니 선글라스를 벗으세요.”

기차가 멈춘 폐철로를 따라 팔당호를 감싸고 돌아가는 한강나루길에 터널을 만났다.

스피커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기계음에 여유롭던 걸음이 머뭇거려진다. 겨울잠에서 깨어나 서로를 껴안고

봄볕을 즐기던 산과 강이 일순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희미한 점멸등이 그 자리를 대신해 깜박이고 있다.

다시 겨울로 돌아간 듯 공기마저 차고 무겁다.

곡선으로 이어진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아 더 길게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는 다가오는 모든 것이 위협적이다.

언제 나타났는지 헬멧으로 무장한 한 무리의 자전거 행렬이 어둠을 가르며 순식간에 사라진다.

온몸이 긴장되고 마음마저 움츠러든다. 하루하루를 불안과 초조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삶도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얼마쯤 왔을까,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세히 보니 멈춰 선 자전거 트레일러에 아이들이 타고 있다.

어둠 속에서도 표정이 신났다. 민준이(5)와 리하(4)는 한 달 넘게 어린이집에 못 가고 집에 갇혀 지냈다고 한다.

 


“아이들이 맘 편히 뛰어놀지 못해 늘 미안했어요.”

은행원인 아빠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평일에 휴가를 내고 이곳을 찾았다.

“참 좋아하네요. 하루빨리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민준이 아빠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어둠 속을 헤쳐 나가는 가족의 모습이 아름답다.

함께 있기에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으리라. 그들을 따라 내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어느새 민준이네 가족은 터널 끝을 지나고 있다. 그들 위로 봄볕이 축복처럼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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