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낙엽 청중’ 앞에서… 인생의 가을을 연주하다 본문

사람풍경

낙엽 청중’ 앞에서… 인생의 가을을 연주하다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12. 2. 09:38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다. 넓적한 플라타너스 잎들이 발아래에서 바스락거린다. 젊은 날 낙엽을 밟을 때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낭만을 즐기곤 했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낙엽 밟는 소리에 가슴이 시려 온다. 낙엽들이 서울시민보다 많을 것 같은 양재 시민의 숲을 걷는 중이다.

“부아앙∼빰바∼.”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한 산책로 벤치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려온다. 자동차 소음과 섞여 들려오는 금관악기 소리에 까마귀가 깍깍 화음을 넣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청바지를 입은 중년 신사가 악보를 보며 트럼펫 연습에 한창이다. 수북이 쌓인 낙엽 앞에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작년 말에 정년퇴직했다는 최덕하(64) 씨다.

30여 년간 교회 차량을 운행했던 그는 교회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던 연주자들이 멋있어 보였단다. 언젠가는 자신도 그 자리에서 연주를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남몰래 키웠었다. 퇴직하고 집에 있으려니 온몸이 쑤시고 마음도 가라앉았다.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렇게 힘든 나날을 보내다 트럼펫을 마련해 차 안에서 불어봤다. 울적하고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 이후로 용기를 내서 공원으로 나왔다. 구석진 곳을 찾아다니다 고속도로와 인접한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교습학원도 다니며 이제는 어느 정도 연주에 자신이 생겼다. 가끔 마주치는 산책 나온 시민들이 응원도 해줬다.

‘낙엽 청중’ 앞에서 연주하는 그의 표정이 행복해 보인다. 봄에 새싹을 내밀고 여름에 무성하다가 가을에 단풍이 들더니 이젠 떨어져 뒹구는 낙엽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위로와 경의를 보내는 듯하다. ‘낙엽 청중’이 그의 연주에 환호한다. 열심히 연습해서 교회 오케스트라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이 이뤄지길 기원하며 공원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가 경쾌하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