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난 뭘 얻으려 했나”… 은퇴 뒤 겨울산에서 찾은 행복의 비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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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뭘 얻으려 했나”… 은퇴 뒤 겨울산에서 찾은 행복의 비밀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12. 11. 15:36

겨울 산을 오르고 있다. 인적이 드문 산길에서 내 그림자가 한 발 앞서 가며 길을 안내한다. 눈을 들어 보니 빈 가지 사이로 드러난 투명한 하늘이 눈이 시리도록 파랗다. 조금만 더 오르면 맑고 푸른 하늘이 손에 잡힐 것 같다. 어느새 마스크 속으로 스며든 차가운 공기가 웅크리고 있던 몸을 깨운다.

오르막이 끝나자 펼쳐지는 광활한 평원에는 황소바람이 반겨준다. 키 작은 나무들은 바람 부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누워 자라고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거센 바람을 맞으며 날개를 돌리고 있다. 파란 하늘 위에 하얀 풍차가 돌고 있는 그림 같은 풍경 속으로 세 명의 등산객이 걸어 들어가고 있다. 그들의 뒤를 쫓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이 번쩍 들고 가슴이 후련해지네요.”

선자령 정상에서 김경호(65) 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을 건넨다. 30년간 함께 일한 직장 동료들과 함께 백두대간을 찾은 길이었다. 퇴직 후에도 10년 동안 계속 만나온 그들은 올해는 코로나 확산으로 도심에서 만나기가 부담스러워 주로 산행을 통해 모임을 갖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마음껏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며 한껏 기지개를 켠다.

“행복은 늘 작고 단순한 것 속에 있더라고요.”

그동안 많은 산을 찾아 오르기에만 바빴는데 이제는 자신에게 ‘살면서 무엇을 얻으려 했나?’는 질문을 자주 하게 된다고 곽승주(63) 씨가 말한다. 젊은 날에는 많은 것들을 갈망하고 그것을 잡으면 더 행복해질 것 같아 아등바등 살았다. 은퇴하고 산을 오르며 스스로 묻고 답하는 사이 그 욕심들을 하나둘 내려놓을 수 있었고 그 빈자리에는 햇살, 바람, 나무 등이 일상의 기쁨을 채워주었다.

선자령 정상에서 머뭇거리니 옷 속을 파고드는 칼바람에 머리털이 곤두선다. 서둘러 김 씨 일행과 헤어져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빈 나뭇가지 사이로 겹겹이 쌓인 백두대간 능선과 동해바다가 아스라이 보인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겨울 산의 고요가 마음속에 평화를 안겨준다. 잎을 모두 떨군 나무 덕에 바닥에서 자란 조릿대가 마음껏 파란 하늘과 햇살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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