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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이 된 기찻길… 칙칙폭폭! ‘썸’ 타는 청춘이 달린다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11. 9. 08:41

‘칙칙폭폭’.

금방이라도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달려올 것 같다.

숨 막히는 일상을 뒤로하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걸음걸이로 철길을 걷고 있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레일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

서울의 서쪽 끝자락 구로구 항동 기찻길이다.

산업화가 한창인 1959년에 준공돼 50년 넘게 산업화를 위해 그 소임을 다하고 지금은 시민들의 산책로가 됐다.

“데이트 장소로 야외공원을 많이 찾아요.”

김현빈(38) 씨와 새리(29) 씨가 시원하게 뻗은 레일 위를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어학원에서 교사와 수강생으로 만나 3개월째 소위 ‘썸’을 타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다 보니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젊은 연인들이 걸어갔던 그 철길 위를 이창렬(63) 부부가 두 손을 꼭 잡고 걷고 있다.

개인사업과 택시운전으로 33년을 일하며 아이들을 다 키웠다.

이제 살만한데 병이 생겨 투석 중이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매일 1만5000보를 걷고 있다.

늘 손을 잡고 걸으니 동네사람들도 불륜으로 오해할 정도라며 아내의 손을 더욱 꼭 잡으며 미소 짓는다.

‘8살 첫 등교 날’ ‘17살 두근두근 첫사랑’ ‘31살 엄마 아빠가 되다’….

침목 위 철판에 새겨진 글씨들 앞에서 발길이 머문다.

살아오면서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가슴 뭉클한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철판에 새겨진 글들이 소중했던 추억들을 하나둘 떠오르게 한다.

저마다 인생이라는 레일 위에 다양한 빛깔과 모습으로 어우러져

걸어가는 사람들이 늦가을 풍경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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