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숨이 막힐 듯 한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운동은 해야겠기에 마스크를 끼고 산책을 다녀옵니다. 흠뻑 젖은 몸으로 집에 들어서니 베란다 밖이 수상합니다. 불기운을 잔뜩 품은 거대한 ‘불새구름’이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잠시 황홀한 광경을 넋이 실종된 듯 중얼거립니다. “불새야 더위 좀 가시게 해줘” 부탁하자 불새 머리위에서 거대한 지니(알라딘 램프에 사는 요정)가 튀어나와 한마디 합니다. “네 주인님 조금만 참으세요. 이 또한 지나갑니다.” 제가 살짝 더위를 먹었나 봅니다.ㅋㅋ
가마솥 폭염이 계속됩니다. 이더위에 어머니가 시골집에 가자고 성화십니다. 시골집에 도착하자 마자 우물에 연결된 호수로 화단에 물을 뿌리십니다. "애들 얼마나 목이 마르겠냐..." 어머니의 측은지심에 시들거리던 꽃들이 생기를 되찾는듯 합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호랑나비가 농염한 자태로 꽃들을 유혹합니다. 산에 잠시 다녀왔는데 땀이 비오듯 합니다. 대추나무 그늘에서 쉬던 정남이처럼 땡칠이가 됐습니다ㅋㅋ
삼복더위에 자벌레가 길을 나섰습니다. 거꾸로 나뭇가지에 매달려 한껏 등을 굽혀 몸을 길게 늘이기를 반복하여 앞으로 나아갑니다. 힘겹게 여름을 나는 자벌레를 들여다보다 하루하루 숨쉬기조차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자벌레는 자벌레나방의 애벌레입니다. 언젠가는 번데기의 허물을 벗고 두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을 날겠지요. 시절인연을 기다리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자벌레가 삶의 스승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도 숲속의 수행자 자벌레는 오체투지(五體投地)하며 여름 속을 가고 있습니다.
한바탕 출근 전쟁을 치른 후 차분해진 도심에 풍경 하나가 말을 걸어온다. 대형서점 앞 벤치에 한 노신사가 동상 옆에 같은 모습으로 앉아 책을 보고 있다. 그 모습에 반해 가던 길을 멈추고 슬그머니 옆자리에 앉아 기웃거려보니 노신사가 형광펜으로 책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열공 중이다. “책을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거워요.” 전직 공무원인 서춘근(69) 씨는 나이제한이 없는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며 수줍게 웃는다. 서점이 문을 열기를 기다리면서 짬을 내 책을 보고 있는 중이다. 새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실감 난다.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서 씨의 모습이 6월의 신록처럼 싱그럽다. 촬영노트 아침, 저녁의 햇살은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빛이 품고 있는 색온도가 분위기를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