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미세먼지 끝자락에 찾아든 노을이 반갑다. 마스크를 끼고 뛰어가는 중년에게도 서로만을 바라보던 청춘에게도 붉은 기운이 어깨를 토닥이며 부드럽게 스며든다. 노을과 함께 찾아든 땅거미에 나무도 사람도 자신의 빛을 내려놓는다. 하루 종일 미세먼지처럼 붙어 다니던 근심, 걱정 황홀한 빛에 빨려 들어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춘다. 코로나로 지친 마음, 노을이 전하는 위로에 가족들에게 사진과 함께 격려문자 한 통 건네 본다. “오늘도 수고했어!” ■ 촬영노트 길을 가다 예쁜 노을을 보면 행복하다. 눈길, 발길은 물론 마음마저 붙잡는다. 코로나19 확산과 미세먼지로 공원마저 발길이 뜸한 저녁. 신도시를 품고 있는 호숫가를 산책하다 아름다운 노을을 만났다. 행운이다.
봄은 고양이를 닮았다. 조용하고 부드럽고 날카롭게 시나브로 다가온다. 코로나 확진으로 집콕 생활 일주일째, 무감각해진 시간 속에 허우적거리는 틈으로 따사한 햇살 한 줌이 거실에 스며든다. 나른한 눈으로 졸고 있던 고양이. 어느새 자기보다 커진 그림자를 보고 화들짝 놀라 귀를 쫑긋 세우고 노려본다. 입춘은 지났지만 발코니 밖은 아직 꽁꽁 얼어 있다. 모든 것이 숨죽이고 있는 듯하지만, 고양이처럼 봄은 조용하고 부드럽고 날카롭게 우리 곁에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다.
삶의 에너지가 바닥날 때 전통시장은 좋은 에너지 충전소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새로운 삶의 의욕이 일곤 한다. 그중 꽃시장은 향기까지 덤으로 주니 일석이조다. 꽃장사 대목이라는 졸업식 시즌이라 남대문 꽃시장에 많은 사람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인적이 뚝 끊긴 채 향기로운 침묵만이 흐른다. “가장 바쁜 철인데 이러고 있네요. 작년만 해도 견딜 만했는데 올해는 너무 막막해요.” 30년 넘게 이곳에서 꽃과 사는 최명숙(70)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생기가 없다. 계속되는 코로나19 여파로 화훼농가는 하나둘 무너지고 졸업식 등 행사가 축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돼 어려움이 더하다고 한다. 꽃 한 다발 사 들고 나서는데 코끝이 찡하다. 매서운 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신문지에 싸인..
경황이 없어 끼니를 놓쳤다. 어머니가 시골집 마당에서 쓰러지셔서 병원 응급실까지 내달리며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입원까지 마치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하루해가 다 갔다. 갈증과 허기가 동시에 몰려왔다. 병원 근처 식당 구석에서 혼자 설렁탕을 먹고 있었다. 뜨거운 국물이 타들어 가던 속을 채워주었다. 몇 숟갈 뜨다가 국물 위에 떠오른 하트 모양 파 두 조각에 눈길이 머물렀다. 한동안 그 모습을 보는데 뜨거운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아닌 척, 괜찮은 척하며 묵묵히 견뎌왔는데…. “얘야, 괜찮다. 어서 먹어.”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도 도리어 자식을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키다리 나무들이 형형색색의 뜨개옷을 입고 있다. 찬바람이 불고 거리에는 낙엽이 뒹구는 쓸쓸한 계절이지만 가로수들이 알록달록 옷을 입고 있는 경기 과천시 문원동 도로는 나무들의 축제가 벌어진 듯하다. “너무 예뻐요.” 30년 경력의 야쿠르트 아줌마 이영옥(70) 씨가 이곳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며 환한 표정을 짓는다. 분홍색 옷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나무들이 입은 뜨개옷과 잘 어울린다. 나무들이 입고 있는 옷을 만져보니 한 코 한 코 정성껏 뜨개질한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작은 정성들이 연결돼 나무가 따뜻해지고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훈훈해졌나 보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거리에 겨울나무들이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 촬영노트 뜨개질로 나무에 옷을 입히는 ‘트리니팅(trees knit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