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무조건 다 나오게, 무조건 넓게…” 나는 사진을 찍기 시작할 때부터 무조건 넓게 보고 사진을 찍는 습관이 있었다. 욕심을 부리면서 더 많은 것을 한가지 사진에다가 담으려고 뒷걸음질을 치다가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무조건 다양한 색이 나오고, 많은 사물들이 나와야 예쁜 사진이다’라는 생각이 머리 한편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원래 나무를 보지 않고 숲을 보는 성격 탓일까? 항상 시험공부 할 때도 보면 나는 큰 그림을 보고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하면서 공부를 하곤 했다. 책을 펼치고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쭈우욱 훑고 큰 틀을 이해한 후 “공부 다했다!”고 외친 후에 바로 책을 덮었다. 세계사같이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 과목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지만, 디테일 ..
호수공원으로 가는 길에서 특정한 길목을 지날 때 마다 향기로운 꽃 냄새가 난다. 아빠한테 이게 무슨 냄새냐고 물었더니, 이건 라일락 꽃 향기라고 대답해주셨다. 옆으로 조금 가서 보니 분홍빛을 띄는 꽃들이 냄새를 풍기며 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하얀색, 분홍색으로 얼룩진 라일락 꽃은 청순하고 참 예뻤다. 꽃이 너무 예뻐서 어떻게 찍어도 예쁘게 나올 것 같았다. 아빠는 어느새 이문세가 빙의되어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며~ “ 라고 흥겨운 노랫말을 부르며 저만치 가고 계셨다. 멋진 사진을 찍어서 아빠를 놀래켜 드리고 싶었다. 나는 카메라를 얼른 꺼내서 사진을 찍었다. 한참 꽃을 찍고 디스플레이로 사진을 봤는데 꽃이 예쁘게 나오긴 했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진이 그냥 “이건 라일락 꽃입니다”라고 마치 설..
산책을 하며 사진을 찍을 때 마다, 카메라 화면에 떠있는 “1/125, 1/250” 이 뭔지 항상 의아했었다. 설명서에 셔터 속도라고 명시가 되어 있었지만, 셔터에 한번 “깜빡!” 하면 사진이 찍히는 것이지, 무엇 하러 그 “깜빡!” 거리는 속도까지 조절을 해야 하나 싶었다. 평온한 일요일 아침에 산책길에 오른 나는, 아마도 날씨가 많이 포근해 져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조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을 유유히 순회하는 모습을 보았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낯선 사람들이, 오늘 따라 자전거 타는 아저씨의 종아리 근육이 돋보였고, 한 발 한발 내딛으실 때 마다 씰룩씰룩 거리는 조깅하는 할아버지의 “노쇠하신 분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팔 근육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변태적인 동기가 아..
2000년 봄 또다시 화마에 휩싸였던 산등성이 가운데는 맨살을 드러낸 채 흙먼지를 날려보내고 있었다. 삼포리 일대는 불난 자리에 거대한 골프장이 들어섰다. 두차례의 화마로 주민들의 큰 저항없이 무혈입성했다고 한다. 죽왕면 인정리와 구성리 국유림에 마련된 영구조사지는 인간의 손을 대지 않고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기를 기다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굴참나무, 신갈나무, 물오리나무들이 서로 숲의 주인이 되기 위해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따라서 몸을 숨길 만한 공간이 마련돼서인지 계곡 아래 개울가의 젖은 모래바닥에 고라니와 멧돼지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들이 눈에 띄어 너무도 반가웠다. 개울에 발을 담그니 송사리떼가 발끝에 모여들었다. 이선녀 아주머니가 벌써 7순을 맞으셨다. 집에서 키우는 소가 40마리로 늘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