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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도 쓸수있죠”… 환갑 넘어 이루는 배움의 꿈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10. 20. 10:50

사각사각, 사각.’

학생들이 왁자지껄 집으로 돌아간 고요한 교실에는 연필 소리만 가득하다. 학생 한 명이 교실에 남아 무언가를 적느라 열심이다.

How do you go to school? 하우 두 유 고 투 스쿨? I go to school by car. 아이 고 투 스쿨 바이 카.

중3 김현희(62) 학생이 영어 단어에 우리말을 달며 숙제를 하고 있다. 입학 당시만 해도 까마득했는데 조금씩 말문이 트이고 외계어 같은 영어 글씨가 친근해지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하던 동네 영어 간판들이 슬슬 말을 걸어왔다.

“마구 가슴이 뛰는 기라예.”

자원봉사를 갔다가 우연히 모집공고를 보았던 때를 떠올린다.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입학할 수 있는 중학교 과정을 모집하는 공고였다. 오래전 잊어버렸던 꿈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경북 고령의 산골이 고향인 김 씨는 8남매의 다섯째로 태어나 언니와 오빠들처럼 자연스레 국민(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부모님 일손을 도와야 했다. 결혼하고 온통 영어로 된 생활용품을 만날 때도 갑갑했지만,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지 못할 때 제일 속상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원망스러웠고 마음에 아쉬움이 남았다.

다시 배울 수 있다는 설렘에 여러 밤을 설쳤다. 입학시험을 볼 때 산수는 어떻게 하겠는데 영어는 속수무책이었다. 한 글자도 아는 게 없어 백지를 냈다.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합격 연락이 왔다.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지만 막상 학교에 다닐 생각을 하니 겁이 나고 걱정이 돼서 다시 잠을 설쳤다. 그때 다 큰 아이들이 엄마 손을 꼭 잡고 격려해주었다. 남편도 평소 맺힌 응어리를 알아채고 어깨를 토닥이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용기가 솟고 힘이 났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려앉았지만, 소녀처럼 또 가슴이 뛴다.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동창생’이란 단어가 본인 생애에는 없을 줄 알았다. 못 배운 한으로 눈물을 삼켰던 세월을 뒤로하고 다시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지만 대견하기도 했다. 여력이 되면 대학까지 진학해 사회복지를 공부해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며 수줍게 웃는다. 새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에 공감한다. 꿈꾸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주름진 얼굴에 기쁨으로 빛나는 그녀의 모습이 교정에 활짝 핀 들국화처럼 아름답다.


* 김현희 씨가 재학 중인 대구내일학교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교육청이 운영, 초·중학력을 인정하며 34세부터 87세까지 재학생 평균 나이가 67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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