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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이곳은 강원도 민둥산 정상입니다. 온 산자락에 은빛 물결로 출렁이던 억새들이 해가 저물어가면서 황금빛으로 물들어갑니다. 지나온 길은 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걸까요? 돌아보면, 아름다운 그 길에서 향기도 맡아보고 소리에도 귀 기울이며 마음껏 누리지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더 빨리 오르려는 욕심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그 걸음들은 비단 이곳만은 아니었겠지요. 어쩌면 제가 그동안 살아온 인생 걸음걸음도 그와 같았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는 내려 가야할 시간입니다. 어둠이 밀려오면서 억새가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이제서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유로운 내 자신을 만납니다. 서툴렀지만 열심히 달려온 저에게 억새들이 온몸으로 박수를 보냅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붉은 저녁노을이 호수에 스며든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다시 마스크를 쓰고 호숫가를 걷고 있다. 멋진 모자를 쓴 노신사가 검은색 가방에서 황금색이 번쩍이는 악기를 꺼내 조립하더니 석양을 배경으로 연주를 시작한다. 굵직한 중저음의 색소폰 소리가 잔잔한 물결 위로 퍼져 나가며 무심하게 걷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 악기가 저한테 살아갈 힘을 줘요.” 연주가 끝나고 이근성(63) 씨가 악기를 소중하게 감싸 안는다. 중학교 때 아버지의 카세트에서 나오는 색소폰 소리를 처음 듣고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언젠가는 저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는 열망을 키웠지만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잊고 지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건축업을 하던 그도 큰 어려움을 겪었다. 시름을 잊기 위해 찾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