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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하루에도 몇 번씩 거울 속 얼굴과 마주한다. 복잡한 일상과 삶 속에서 주름은 늘고 표정은 나날이 굳어간다. 100세 시대라는데 이대로 늙어 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은근히 걱정되던 중 오래전 TV에서 해맑게 웃던 할머니 한 분이 생각났다. 수소문 끝에 올해 100살을 맞으신 김순택 할머니를 만나러 인천 옹진군 신도를 찾았다. 마을 이장님 안내로 과수원 한가운데 있는 집에 들어서자 햇살 아래 바느질을 하던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백발의 온화한 미소가 온 집 안을 환하게 밝히는 것 같다. 천천히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긴 할머니는 이장님의 만류에도 포트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서 저어 주신다. 주름진 손을 보니 백 번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겨울을 보내며 모진 세월을 지냈을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할머..
아기 손 같은 신록들이 기지개를 켠다. 분홍색 앵초, 보랏빛 팥꽃나무, 노란 산괴불주머니가 저마다 자신의 색을 뽐내고 있다. 연못가에 동이나물이 노란 꽃을 피웠고 그 사이로 갓 깨어난 올챙이들이 꼬물꼬물 헤엄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된 봄의 절정에 경기 용인 한택식물원에서 만난 풍경이다.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식물도 마찬가지지요.” 모란작약원에서 만난 이택주(80) 원장이 새로 돋아난 신록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반평생 식물원을 가꾸고 지켜온 그의 모습에는 할아버지 같은 자상함과 부드러움이 배어 있다. 경제 논리가 앞서던 1970년대 그는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우리 산, 우리 강의 작은 풀꽃들에 젊음과 열정을 바쳤다. ‘제대로 된’ 식물원을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국내 최..
‘딸랑 딸랑 딸랑.’ 맑고 시린 풍경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진다. 스피커에서 울리는 독경 소리에 맞춰 연등들이 춤을 춘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도심 속 사찰 길상사를 찾았다. 네 마리의 암수 사자가 떠받치고 있는 길상7층보탑 주변을 돌며 지친 마음을 다독이다 문득 잊고 지내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만인간 다 편하고 다 평화로워, 화목을 이루면 우리 자식들에게 좋겠죠. 자식들 공만 안 드립니다. 우리나라가 편해야 돼요. 한 몸 한뜻으로 모두 편하게 해주십쇼.” 마치 랩을 하듯이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신 할머니는 앞치마에 고이 가져온 방울토마토 몇 알을 돌탑 위에 올려놓으셨다. “정성이 부족해서 우짠디요, 더 사갖고 올 것인디 이렇게 왔네요.” 햇살이 곱던 그날, 두륜산 만일지암 오층석탑 앞에서 기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