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강변마을 이어주던 섶다리의 추억… 가족도 일상도 그립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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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마을 이어주던 섶다리의 추억… 가족도 일상도 그립다

빛으로 그린 세상 2021. 2. 20. 15:08

함박눈이 내린다. 산과 들 그리고 꽁꽁 언 강물 위로 소복이 내려앉는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산하가 어느새 순백의 세상이 됐다. 눈발을 헤치며 누렁이가 앞서가고

지게를 멘 주인이 뒤를 따라 다리를 건너고 있다. 그 정겨운 모습에 왠지 모를 그리움이 일렁인다.

강원 영월군 평창강 판운리 섶다리 풍경이다.

“내 별명이 지게 도사야. 하하하.”

설을 앞두고 다리 건너 이웃 마을에 다녀온다는 하창옥(74) 씨가 불콰해진 얼굴로 호탕하게 웃는다.

발채를 얹은 지게 위에는 짐이 가득하다. 젊을 때 지게질깨나 했다며 지금도 일을 할 때 지게가 요긴하단다.

신작로가 뚫리고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 있지만, 강 건너 이웃 마을에 갈 때면 이 다리가 제격이다.

강 건너 이웃집에서 약주 한잔 걸치고 산이(풍산개)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발까지 날리니

더욱 마음이 넉넉해진 듯 유쾌한 표정이다.

“옛날에 다리 놓는 날은 마을 잔치였지.”

갈수기인 10월쯤 강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강을 사이에 둔 두 마을이 다리 기둥을 할 나무를 해오느라 분주해진다.

 


두 마을의 어른들이 다리를 놓는 동안 아이들도 덩달아 강가에 나와 신이 났다.

다리가 완성되면 강 사이에 두 마을이 하나가 돼 서로의 노고를 위로하며 잔치를 벌였다.

이듬해 장마 때 다리가 떠내려가면 가을에 다시 다리를 놓으며 서로의 소통과 화합을 이어갔다.


“이번 설에는 아이들보고 오지 말라 했어.”

손주들이 오면 섶다리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코로나로 어쩔 수 없다는 하 씨의 표정에 쓸쓸함이 스쳐 지나간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섶다리 위를 혼자 걸어본다. 해마다 무너져도 다시 놓인 섶다리가 두 마을을 이어주듯이,

지금 하고 있는 무수한 노력이 잠시 멈춘 우리들의 일상과 교류를 다시 이어주리라.

해마다 어김없이 봄이 우리 곁에 찾아오듯이… 눈 덮인 얼음장 밑으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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