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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먼 산에 동이 트자 밤새 잠들었던 대자연이 기지개를 켭니다. 투명한 아침 햇살이 굽이굽이 산자락을 어루만지고 이슬 머금은 신록에도 햇살이 고루 퍼집니다. 이른 아침부터 백구 세 마리가 들판을 신나게 뛰어다닙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제 마음도 강아지처럼 뛰놀던 유년시절로 돌아갑니다. 우리 아이들도 저 강아지들처럼 마스크 없이 신나게 뛰어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만물이 꿈틀거리는 이 신록의 계절에 마스크로 동심을 가리고 있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아이들아 조금만 더 힘내. 잘 견뎌주는 너희들이 참 대견하고 고맙다. 사진·글 = 김선규 선임기자
콧등에 땀이 솟아나고 숨이 차오른다. 억지로 잠을 청해 보지만 버스는 더디기만 하다. 대부분 눈을 감고 있거나 차창 밖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숨 막히는 일상이 5개월째 되풀이되고 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과연 끝이 있기나 한 걸까’ 하는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차에서 내려 잠깐 마스크를 벗고 숨을 몰아쉬자 ‘휘이’ 하는 휘파람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마치 오랜 잠수 끝에 물 위로 얼굴을 내민 해녀들의 숨비소리 같다. 한 번 더 긴 숨을 내쉬니 ‘하아~’ 소리와 함께 해녀 할머니 한 분이 해삼, 멍게가 가득 든 망사리를 짊어지고 내 기억 저편에서 걸어오신다. 제주 추자도 옆 작은 섬 횡간도의 고정심 할머니다. ‘휘호이~ 하아~’ 오랜 물질 끝에 물 밖으로 나와 숨을 몰아쉬는..
‘드르륵, 드르륵’ 어른 키보다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재봉틀 박음질 소리가 요란하다. 선반에 수북이 쌓인 천 조각들이 빠른 손놀림에 낡은 재봉틀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스크를 구하려고 몇 시간씩 줄서 있는 모습이 마음 아팠어요.” 22년째 강화경찰서 옆에서 양장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애자(59)씨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로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스크를 만들어보았다. 우선 식구들을 주고 양장점을 찾는 손님들에게도 나눠줬다. 반응이 무척 좋았다. 때마침 마스크제작 자원봉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에 본격적으로 마스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강화군 자원봉사센터에서 재료와 샘플을 갖다 주면 한 땀 한 땀 마스크를 만들어 필요한 이웃에게 전해주고 있다. 16만1803명.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
“끝이 있기나 한걸까?” 출근길 버스 안에서 문득 차창 밖 노란빛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산수유가 꽃을 피웠다. 하루하루 안타깝고 숨 막히는 일상 속에 무심한 봄은 어느덧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서울에서 매화가 가장 먼저 핀다는 강남 봉은사를 찾았다. 사찰 입구부터 그윽한 향이 느껴진다. 마스크에 가려 잊고 지내던 아득한 향기다. 오랜 벗을 만난 듯 반갑다. “올해 손녀딸이 대학에 들어갔는데 아직 학교를 못가고 있어…….” 손녀에게 매화 사진 보내 준다는 백발의 노신사가 꽃들을 스마트 폰에 정성껏 담고 있다. “얼마나 설레고 기대가 컸겠어, 좀 위로가 됐으면 좋겠어. “ 올해 여든 한 살이 되었다는 황기인 어르신은 6.25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한다. “어제는 마누라..
오랜만에 명동성당을 찾은 그날, 한국 천주교 역사상 236년 만에 미사가 중단되었다. 한국전쟁 중에도 종교 할동을 멈추지 않았던 곳이다. 개인 기도를 하는 신자들을 위해 성당 문은 열려있었다. 깊은 어둠이 성당 구석구석에 피어올랐다. 스테인드글라스 통해 들어온 한줄기 빛만이 적막을 감싸주고 있다. 어둠 속 곳곳에서 간절한 기도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왔다. 검은 마스크를 쓰고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이 경건하다. 카메라를 갖고 있었지만 감히 그 순간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없다. 무거운 침묵 속에 흐르는 성스런 아우라에 소름이 돋았다. "할 수 있는 것이 기도 밖에 없어요." "우리 아이들과 젊은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기도를 마치고 나서며 자신을 ‘루치아’ 라고 소개한 자매님의 눈가가 촉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