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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시와 사진의 만남

바다에 시간을 곶고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6. 13:35

바다에 시간을 곶고/문정희

시간은 뙤약볕처럼 날카로웠다
두럽고 아슬아슬하게
맨 살 위에 장대를 꽂기도 했다
그래서 삶은 때때로 전쟁을 연상시켰다
하늘아래 허리를 구부리는 것은 굴욕이 아니다
이 빗발치듯 내려꽂히는 시간 속에
허리를 구부리고, 서로 이마를 맞대고
생명과 생명은 이어져왔다
바다가 밀려오고, 밀려나가고
또 가을이 오고, 봄이 오고
그러므로 우리가 허리를 구부려 줍는 것은
차라리 영원한 허기인지도 모른다
허기가 바다를 다시 채운다
허기가 지상에 가을을 불러온다
마치 병정들처럼
시간이 맨살 위로
장대를 들고 다가드는 시간
문득 발아래 깔리는 무수한 별들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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