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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금붕어

빛으로 그린 세상 2018. 1. 8. 14:10

매미 소리가 요란하다. 뜨거운 한낮의 햇살이 서서히 베란다에 들어온다. 물풀과 다슬기 두어 마리 그리고 금붕어 한 마리가 살고 있는 항아리에도 햇살이 쏟아진다. 그늘 한 구석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금붕어는 간간이 가슴지느러미만 살랑거릴 뿐, 한가롭게 헤엄을 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물고기는 그 안에서 잠을 자는 듯 꿈을 꾸는 듯 하다.

  이 금붕어는 어린이날 선착순으로 받은 무료 사은품이었다. 동네 대형 할인판매점에서 ‘어린이들에게 금붕어 세 마리를 무료로 나누어 준다’는 방송이 나가자 우리 아이들은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었다.

  순간 망설였다.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우리 집에 살아 들어왔다가 죽어나갔던가. 앵무새, 금화조, 장수풍뎅이, 물고기 등등, 아파트 화단 후미진 곳에 아예 지정 묘지가 있을 정도이지 않은가. 시골에서 올챙이라도 잡아오면 그 다음날부터 배를 허옇게 뒤집고 둥둥 떠다니는 그 것들을 건져 올리는 건 내 몫이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 가져와서 키울 욕심으로 더 이상 애매한 생명들을 죽이지는 말자고 아이들과 다짐을 했던 터였다. 

  그런데 ‘선착순’, ‘무료’라는 말이 화근이었다. 줄을 서서 금붕어를 받아가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은 안절부절못했다. 마치 금붕어를 받아가지 않으면 우리만 손해를 보는 그런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 죽더라도 공짜인데 뭐 어떤가!’ 나도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어느덧 아이들에게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막내 책상 위에 세 마리, 둘째 책상 위에 세 마리. 그렇게 알록달록하고 앙증맞은 금붕어들이 커다란 유리병 안을 헤엄쳐 다니는 걸 보면서 즐거워했던 것도 한때였다. 이틀쯤 지났을까, 자고 일어나면 한 마리씩 죽어 있었다.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둘째와 막내의 어항에서는 아침이면 금붕어들이 둥둥 떠올랐고,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죽은 물고기들을 치우고 물을 갈아주었다. 어쩌자고 금붕어를 받아왔단 말인가. 물고기를 키우려면 제대로 된 어항과 산소공급기까지 사왔어야 했는데 물고기 먹이만 달랑 사들고 온 것도 후회스러웠다.

  막내의 유리병에 마지막 한 마리만 남았을 때, 남편은 그 금붕어를 베란다 한쪽에서 물풀을 키우던 항아리에 넣어버렸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항아리에서 금붕어가 보이질 않았다. 아이가 금붕어를 찾으면 나는 아빠한테 물어보라고 하고, 남편은 엄마한테 물어보라고 하면서 우리는 서로 죽은 물고기를 아이 몰래 치운 줄만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금붕어는 사라져갔다. 

  어느 일요일 아침, 베란다에서 화분에 물을 주던 남편이 탄성을 질렀다. “얘들아, 여기 금붕어 아직 살아 있어!” 그 동안 어느 구석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죽은 줄로만 알고 밥도 안줬는데, 일주일도 넘게 그냥 내버려두었는데, 금붕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느러미까지 흔들며 작은 입을 뻐끔거렸다.

  이 기적과도 같은 사실에 우리 식구들은 모두 흥분했다. 막내는 정말 운 좋은 물고기라면서 물고기 이름을 ‘럭키’라고 지어주었다. 남편과 나는 흙으로 빚은 질그릇 항아리의 효능과 물풀의 자정 작용에 대해 새삼 감탄을 했다. 지나친 관심과 보살핌보다는 그냥 내버려두는 게 더 나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항아리와 물풀의 효능을 굳게 믿고 용기를 내어 ‘럭키’의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금붕어 두 마리를 다시 사들고 온 것이다. 하나는 머리에 까만 점이 있고 또 하나는 등에 빨간 얼룩이 있는 이 꼬물꼬물하고 귀여운 생명의 값어치는 한 마리에 고작 오백 원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숨쉬는 항아리도 오염 물질을 빨아들이는 물풀도 럭키의 새 친구들에게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결사적으로 버텨 온 럭키와는 다르게 그들은 너무도 쉽게 생명을 내놓았다. 

  다른 금붕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환경에서 럭키는 지금 석 달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활기차게 헤엄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려는 것일까, 물 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간간이 더 채워주는 신선한 물도, 조금씩 넣어주는 밥에도 도무지 관심이 없다.

  한때는,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생명을 부지하는 것만이 삶의 목적이라면 그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하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베란다를 들락거릴 때마다 느껴지는 이 작은 생명의 존재감이 이제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항아리 안에서 가만히 있는 럭키가 작은 암자에서 홀로 명상을 하는 도인같이 여겨진다면 나의 지나친 상상일까. 

  똑같은 환경인데도 어떤 물고기는 하루 만에 죽고, 어떤 물고기는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건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또 럭키가 기적적으로 생명을 유지해가는 데 우리 식구들이 특별히 해준 것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럭키는 주인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신의 운명을 송두리째 내맡기는 애완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덤으로 주는 무료 사은품인 럭키는 ‘재미로 키우다가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힘들고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자연(自然)’이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다슬기 두어 마리가 친구가 되었다. 머리에 빨간 점이 있는 금붕어 럭키는 지금도 명상을 하는 듯 꿈을 꾸는 듯 가슴지느러미만 이따금씩 살랑거린다.
                                                                                       * 글은  최경애님이 쓰셨습니다.

 

 

금붕어랑 친구가 되고 싶은 아이들의 고운 집착이
한 마리의 생환 앞에 할 말이 많아 보입니다.

자연은 때론 인간의 의지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하나봐요.
살아있는 금붕어 한 마리는
그늘 진 곳에서 한 줌 햇살을 받아 생겨난 녹조류를 먹고
최대한 에너지를 아끼며 살아남은 듯 합니다.

금붕어는 지능이 너무 낮아서 조금 전에 먹는 것도 까맣게 잊고
게속 먹기 때문에 너무 많은 량의 밥을 주면
배가 ㅌ져서 죽는다고 아이들이 그러더군요.

자연 앞에 인간의 무관심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엄마의 글 속에 자연에 대한 깊은 철학이 담겨 있어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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