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긴 장마 밀어낸 푸른 하늘… 시련 딛고 ‘하하호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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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마 밀어낸 푸른 하늘… 시련 딛고 ‘하하호호’

빛으로 그린 세상 2020. 8. 29. 10:07

장맛비가 그쳤다. 신기록도 갈아치운 긴 장마였다. 오랜만에 갠 하늘은 맑고 푸르고 또 습하다. 뜨거운 햇살 아래 수재민들은 무너진 보금자리를 복구하고 쓰러진 농작물을 일으켜 세우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절망이든 희망이든 어떤 상황에서도 삶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연천 수해현장을 지나 임진강변을 달리다 언덕 위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붙잡는다. 허리에서 몸을 뒤틀어 하늘을 향해 서 있는 모습이 의연하다. 하늘의 뭉게구름과 함께 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는데 왁자지껄한 소리가 고요한 풍경의 정적을 깨운다.

“아빠, 달고나 냄새가 나.”

앞서가던 민준(9)이가 뒤에서 오는 가족을 향해 소리친다. 아빠 박정호(43) 씨가 방아깨비를 잡고 있던 민준이 동생들 손을 잡고 민준에게 다가간다. 보라색 칡꽃이 만발했다. 박 씨는 분당에서 가족들과 휴가길에 나선 참이다. 맞벌이인 박 씨 부부를 도와 3년 전부터 삼형제를 봐주신 장모님을 모시고 한적한 곳으로 휴가를 나섰다.

막내를 목말 태운 아빠가 언덕 위를 겅중겅중 걸어 다닌다. 막내는 하늘 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듯 신이 났다. 아이들도 서로 태워 달라고 아빠를 잡으러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엄마와 외할머니가 손을 흔든다. 외롭게 서 있던 팽나무도 덩달아 신이 났다.

민준이네 가족이 떠나고 언덕 위 나무 한 그루는 홀로 남겨졌다. 나무 계단을 통해 고구려 때 만들어진 당포성 위 언덕에 올랐다. 임진강이 굽이쳐 흐르고 감악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언덕에 올라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본다. 수해로 애태우고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조마조마한 마음도 강물에 실려 보내 본다.

천년의 세월에 비겨보면 우리가 겪는 시련은 스쳐지나가는 바람일 것이다. 달콤한 칡꽃 향기가 바람에 실려 와 속삭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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