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태풍 (2)
빛으로 그린 세상
삼복더위에 맞은 휴가, 에어컨과 TV를 벗 삼아 하루 종일 집콕이다. ‘우당탕탕’ 요란한 빗소리가 베란다 창을 두드린다.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 밖을 내다보니 먹구름을 몰고 다니던 하늘이 요란하게 소낙비를 토해낸다. 무더위 속에 목말라하던 가로수들이 싱그럽다. ‘왈왈’ 어디서 나타났는지 귀여운 강아지 한 마리, 먹구름 사이를 헤치고 하늘 위를 뛰어 다니며 라이브 공연을 펼친다. 물가는 치솟고 살림살이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먹구름 몰려오듯 피어나던 근심걱정들이 강아지 닮은 구름 재롱에 슬며시 꼬리를 감춘다. 여름이 준 선물에 어느덧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자연은 이 세상에서 가장 흥미로운 볼거리를 날마다 제공해준다. 태풍이 오가는 여름 하늘은 어느 계절보다 변화무쌍하다. 가끔 하늘멍(하늘을 바라보며 멍때림..
가을 들녘에 시름이 깊다. 가장 길었던 장마와 연이은 태풍에 멍든 농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늘은 그 어느 해보다 맑고 푸르다. 두 차례 태풍이 지나간 후 사과농사를 짓는 지인을 찾아 경북 영주 안남마을로 가는 중이었다. 마을 들머리에 들어서니 늘 아름답던 가을 풍광은 찾아볼 수 없다. 매년 이맘때면 마을 입구부터 사과나무들이 크리스마스 트리같이 붉은 열매를 달고 한바탕 가을 축제를 벌이던 곳이다. “하늘이 우리를 버린 기라예∼.” 25년째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노홍석(55) 씨가 낙과를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나무에 달려 있어야 할 붉은 사과들이 땅에서 뒹굴고 있었다. 가지에 듬성듬성 달려 있는 사과들도 생기가 없다. 소백산이 큰바람을 막아주고 맑은 날이 많아서 이곳 사과는 웬만한 태풍에도 끄떡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