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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바람이 전하는 ‘아버지의 숨결’
바람이 분다. 기다렸다는 듯 수천 개의 바람개비가 일제히 돌아간다. 언덕에서 잠자던 거인 조각상들이 기지개를 켜고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바람개비 앞에서 셀카를 찍던 연인들은 수줍게 입맞춤을 한다. 평화의 바람이 부는 곳,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이다. 휠체어가 햇살에 반짝인다. 부인과 함께 외출 나온 이승민(78) 씨가 휠체어에 앉아 바람개비를 본다. 평생을 섬유업계에서 일하다 은퇴 후 텃밭을 가꾸며 알콩달콩 살아가던 중 4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날벼락 같은 일로 한동안 망연자실했지만, 부인의 지극정성 간호로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더 이상 해줄 게 없어 안타까워요.” 부인에게 늘 고맙고 미안하다는 이 씨가 담요를 덮고 바람 부는 곳을 향해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집 안에만 있다가 오랜만에 맞..
사람풍경
2020. 7. 28. 08:58
찬바람에 어린자식 멀리 보내는 벌개미취
찬바람이 불어옵니다. 연보랏빛으로 가을 들머리를 물들이던 벌개미취 꽃이 어느덧 백발이 되었습니다. 자식을 멀리 보내는 애끓는 부모마음 처럼 뽀얀 솜털씨앗을 잔뜩 움켜쥔 채 좀처럼 놓지 못합니다. 한차레 세찬 바람이 불자 더는 미련없이 씨앗을 훌훌 날려보냅니다. 솜털에 싸여 산으로, 들로 날아가는 여린 생명들은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내년에 보랏빛으로 우리를 반길 것입니다. 희망이 품었기에 꽃은 활짝 피었을 때보다 새생명을 떠나 보낼 때 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 글 김선규기자
빛으로 그린 세상/생명을 찾아서
2019. 10. 14. 0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