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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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한 줌 햇살의 희망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8. 19:34

- 정동진에서

차창 밖으로 성큼 다가온 바다가 넘실거린다.
어느 틈엔가 하늘이 푸르스름하다.
터널 같은 어둠 속을 기차는 몇 시간이나 달렸던 것일까.
동해 해돋이를 보겠다고 무작정 밤길을 나선 길이었다.

 

마음이 설렌다. 올해는 해돋이를 꼭 보고 싶었다. 아득한 수평선 위로 힘차게 솟아오르는 해를 보고 있노라면, 그 ‘희망’이라는 것이 내 가슴에도 고동칠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살기가 어지간히 팍팍하기도 했었나보다.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꾸 움츠러든다. 희망이라는 보물을 찾아 떠나는 모험가의 심정이랄까. 그 보물을 가득 담아 와서 가족들에게 나누어 주리라 마음먹었다.

혼잡을 피해서 하루 일찍 떠났는데도 정동진 바닷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해를 보기 위해서 밤새 각지에서 달려온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연인끼리, 가족끼리, 또는 친구와 함께 모여서 동쪽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수평선 위로 하늘에는 구름이 두텁게 깔려있다. 시간이 지났는데도 해는 좀처럼 나오질 않는다. 구름 사이로 붉은 기운만 내비친다. 발을 동동 구르며 추위에 떨고, 해가 나오지 않을까봐 걱정하면서, 마음이 더욱 절실해진다. 모래사장에서, 갯바위 위에서 빼곡하게 서있는 사람들 모두 한마음이리라.

여기저기서 함성이 들려온다. 해가 구름을 뚫고 제 모습을 드러낸 건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오늘 해를 보지 못하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처럼 간절한……. 기다리는 내내 무슨 소원을 빌까 망설이기만 했는데 마음이 다급해진다. ‘그래, 사랑이야, 가족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사랑하고 나 자신도 더 사랑할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금방 눈이 부셔서 더 이상 해를 바라볼 수가 없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해를 맞이하는 그 순간은 짧았다. 발길을 옮기는데 햇살이 따라온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내내 햇살은 온 세상 구석구석을 참 공평하게 고루 비춰주었다.

해를 기다리는 마음은 무엇일까. 때가 되면 어둠이 물러가고 해가 뜬다는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은 걸까. 그래서 긴 어둠의 터널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떨쳐버리고 싶은 걸까. 희망을 찾아 떠나왔건만, 나는 왜 그 짧은 순간만이 이미지로 남은 채 무덤덤한 것일까.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에는 오후였다. 거실 한 가득 늘어놓은 물건과 아이들 위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평소에는 먼지만 부옇게 보여서 커튼을 내리느라 분주했다. 그런데 거실 안에 가득한 그 햇살이 너무나 정겨웠다. 고생스러울까봐 아이들을 집에 두고 갔었는데, 정동진에서 맞이했던 해가 우리 집 거실에서 아이들을 비춰주고 있었다. 뭉클했다. 그리고 가슴 따뜻한 희망을 보았다. ……. 내년에는 가족과 함께 해돋이를 보러 가야겠다.

글. 최경애(수필가)  사진. 김선규(생명다큐 사진작가)

 

찾아가는 길

바다와 가까이 맞닿아있는 정동진역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해돋이 명소로 유명해졌다. 정동진 여행은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가는 기차여행이 제격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공사 정동진역 홈페이지 http://www.jeongdongjin.co.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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