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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여행기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5. 10:16

중앙아시아의 방대한 땅덩어리, 카자흐스탄 여행길에서는 최소한 세 번 놀란다.

첫 번째는 카자흐스탄발 비행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시작된다. 구 소련제 일류신 민항기로 기내시설이 마치 시골 좌석버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낡았다. 여기에 지정좌석 조차 없다. 두번째는 7시간을 날아 카자흐스탄 제일의 도시 알마티 국제공항에 도착했을때 펼쳐지는 이국적 풍광이다. 더위로 이마에는 땀이 흐르는데 멀리 시선을 던지면 천산산맥의 만년설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번째는 바로 카자흐스탄의 넓은 땅덩어리다. 호텔 24층에서 내려다본 알마티 시가지는 잘 그린 한폭의 수채화 같다. 그런데 한번 서쪽으로 눈을 돌려보자. 끝간데 없이 펼쳐진 지평선이 남한의 27배인 카자흐스탄의 방대함을 실감케해준다.

 

때문에 카자흐스탄에는 관광편의시설이 부족하기 그지없는데도 유럽이나 일본 등지에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바로 그같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이 한국인에게 갖는 의미는 그들과 또 조금 다르다.

이 나라에 대해 더 알아보자.

카자흐스탄은 북으로는 러시아, 남으로는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동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카스피해를 통해 아제르바이잔과 접경해 있다. 지난 91년 독립이후 시장경제 도입 및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독립국가연합(CIS) 국가중 가장 개방적인 경제체제를 갖추고 있다.

특히 인종 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로 131개 민족이 함께 모여 살고 있는데 카자흐인 793만(53.4%), 러시아인445만(30%), 우크라이나인 55만(3.7%), 우즈베크인 37만(2.5%), 독일인36만(2.4%), 타타르족25만(1.7%)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한민족인 ‘고려인’도 10만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그래서 알마티 시내를 걷다보면 다양한 인종의 늘씬한 여성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에는 이런 일반적인 국가 개요로는 이해할 수 없는 우리 민족만의 깊은 비애가 서려 있다.

이를 알기 위해선 우슈토베를 찾아 보아야 한다. 알마티에서 북쪽으로 340㎞ 떨어진 우슈토베시(市). 우슈토베는 2차대전중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이곳으로 강제 이주된 고려인들의 최초 정착지다.

1937년 9월말 일본 간첩행위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스탈린이 서명한 명령서 한 장으로 시작된 극동지역 한인들의 강제이주는 이후 90여 차례에 걸쳐 계속됐다. 당시 10만명의 한인들이 아무런 연고없는 이곳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소개되었다. 고국을 등지고 떠나온 이국땅에서의 강제이주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추위속에서 시베리아 벌판을 따라 떠돌던 설움은 또 얼마나 컸을까.

알마티에서 우슈토베로 이어진 도로는 말이 고속도로지 비포장 시골길 같다. 서울에서 광주정도의 거리를 아침 먹고 출발해 저녁무렵이 돼야 도착할 수 있었다. 도로사정은 열악하지만, 그 풍경은 줄곧 사람들을 압도한다. 끝없이 이어진 대평원과 시야를 가득 채우는 푸른하늘. 도로사정이 좋아서 시속 100㎞가 넘는 속도로 그냥 스쳐 지나치지 않는다는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한나절 내내 따라 오는 웅장한 천산산맥의 만년설과 끝없는 벌판 사이로 펼쳐지는 거대한 캅차카이 호수의 풍경과 함께 달렸다.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에 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넋놓고 바라보는 여행객들 모두 한점의 구름이 된 듯 아무도 말이 없다.

                                                                                                        알마티시에서 우슈토베로 가는 길

마침내 우슈토베. 1937년 겨울의 찬바람 속에 숨져간 사람들의 묘지앞에 방문객들은 고개를 숙인채 긴 묵념을 했다.

간단한 옷가지와 얼마 안되는 식료품이 전부였던 이주 고려인들은 그해 10월 우슈토베 시 외곽 황무지인 고로드우슈토베 지역 야산 인근에 첫짐을 내렸다. 혹독한 추위와 기근속에 그들은 토굴, 마굿간, 폐허가 된 사원등지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죽음의 그늘과 싸우면서 그해 첫 겨울을 보냈다. 지금은 거의 무너져 내려 형체를 구분할 수 없는 토굴 주변에는 한인들의 슬픈 역사를 원통해 하듯 풀조차 자라지 않았다.


                                                                        우슈토베 읍내에서 손수 가꾼 채소를 파는 고려인 할머니들

현재 카자흐스탄에는 강제이후 후손인 2~3세대 고려인이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카자흐인조차 인정하는 고려인들의 근면성과 부지런함은 실제로 다방면에 걸쳐 그 빛을 발했다. 그동안 정치가, 학자, 의사, 경제인, 법률가등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를 배출했고 사는 형편도 다른 민족과 비교해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풍요롭다.

우슈토베에는 CIS에선 유일하게 한글을 가르치는 ‘제르젠스키’학교가 있다. 이 학교에는 1학년부터 11학년까지 300명이 재학중인데, 120명이 고려인이다.


                                                                                     고운 한복을 입고 노래를 선물하는 고려인3세

한국인 방문단 일행은 이 학교에 들러 준비해간 한국동화책 100여권과 학용품을 전달했다. 마침 이곳을 방문했을 때 방학중이었지만 몇몇 학생들이 나와 사물놀이와 고운 우리의 노래를 선사하였다. 마지막으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학생이 나와 ‘만남’을 불렀다. 묵묵히 공연을 지켜보던 방문단 모두 목이 멘 가운데 함께 합창을 하였다.

현지인들이 즐겨 먹는다는 보폭(보드카로 만든 폭탄주) 한잔이 갑자기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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