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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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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6. 14:13

일산으로 이사 온 지 10년이 되어간다. 생명을 주제로 사진작업을 하던 나에게 이곳은 천국이었다. 꽃다지, 냉이, 별꽃등 봄이면 어김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꽃부터 화려한 향기를 뽐내는 목련, 벚꽃, 수수꽃다리등 사계절 찾아드는 자연의 친구들을 벗하며 그것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작업은 내 삶의 소중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하늘, 호수, 나무, 꽃...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산책을 나설 때 마다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이 다르고 새벽과 아침, 저녁의 모습이 다 달랐다.
그 산책길에는 지금은 대학생이 큰 아이부터 중학생이 된 막내아들까지 식구들이 동행하곤 했다. 아내와의 산책길에는 늘 아이들 커가는 문제가 화재로 등장했고 집안문제도 빠지지 않고 대화메뉴로 등장했다. 그 때도 내손에는 늘 카메라가 손에 들려있었다.

올해 둘째아이가 고3이 되었다. 입시준비로 평일에는 얼굴 보기 힘들다. 둘째가 지난겨울 어느 일요일 새벽 운동을 하겠다며 아빠를 따라 산책길에 동행했다. 아빠의 사진 찍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자기도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아빠 카메라를 쥐어주니 이곳저곳을 살피며 사진을 찍었다. 나무도 찍어보고 호수도 찍고 뒹구는 낙엽도 찍고...
한참을 사진을 찍던 녀석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잠시지만 입시에 찌든 둘째의 얼굴이 모처럼 환해졌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유독 아빠 카메라에 관심이 많았던 기억이 난다. 자기 얼굴만한 큰 카메라를 눈에 대고 아빠흉내를 내며 재롱을 떨던 녀석이다. 모처럼 환환 둘째의 얼굴을 보며 아빠가 즉석 제안을 했다.
“준우야 앞으로 아빠와 사진산책을 해볼래?”

흔쾌히 아빠제안을 받아들인 둘째에게 조그만 자동카메라를 선물했다. 이때부터 둘째아이와 사진산책이 시작되었다. 바쁜 고3일정상 자주 할 수 없지만 가끔씩 하는 함께하는 사진산책길은 늘 즐거웠다. 사진에 대한 매뉴얼과 복잡한 생각들은 모두 접어 버리고 그저 마음가는 데로 사진을 찍어보라고 했다. 새싹을 찍어보고 날아가는 새를 찍어보고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찍어보았고 사진작업에 몰입하는 서로의 모습도 찍어 보았다.

사진과 산책은 참으로 닮은 점이 많다. 늘 변화하는 자연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 했을때 우리 마음속에는 작은 행복이 피어난다. 산책을 통해 사진을 배우고 사진을 통해 산책이 더 즐거워졌다.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마음 상할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상한 마음이 내 안에 갇혀 있을 때 그것은 곯아서 상처가 된다. 그 상한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 객관화 시켜 주어야한다. 산책을 통해 그 마음이 밖으로 나올 수 있고 사진을 통해 그 마음이 객관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사진산책을 계속 되면서 둘째의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사진을 통해 자연을 접하는 둘째의 표정은 호기심과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작은 풀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그냥 지나치던 나무와 꽃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아이는 점점 생기를 되찾아 가는 것 같았다.
지난 20여년간의 경험을 통해 제일 확신이 가는 문장 하나가 “사진은 내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라는 말이다. 이는 곧 사진을 통해 힘들고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확실히 입시가 주는 스트레스에서 사진산책은 위로와 상처난 마음에 조금이나마 치료제가 되어준 것 같다.  

둘째아이와 사진산책을 통해 사춘기 이후 소원해가던 아들과 아빠의 관계가 친한 친구처럼 가까워졌다. 지금은 서로의 눈길만 봐도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가 있다. 사소한 문제에 부딪혀도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내 마음은 벌써 아이와 함께할 사진산책에 설레어 진다.        

2013-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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