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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4-1 (배움, 성장 그리고 소통)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3. 15:36

<아빠>

초롱초롱한 두 눈이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다. 얼굴과 몸짓이 닮은 아빠와 아들이다. 잠시 뒤 귀에 익숙한 “땡”하는 전자레인지 벨소리가 정막을 깨트림과 동시에 두 사람은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자, 먹자”라며 같은 동작으로 신나게 합창을 한다. 요즘 인기 있는 개그프로그램의 한 장면이다. 뚱보 아빠와 아들이 먹을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웃음이 빵 터진다. 다른 것은 몰라도 두 사람은 적어도 먹을 것에 대해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한 마디로 소통이 되고 있다.

내겐 아들이 셋 있다. 큰 아이는 대학교 2학년. 가끔 맥주나 한잔 하자고 해야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바쁘다. 아빠와 함께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던 막내아들도 봄날 지나가듯 훌쩍 커버려 어느새 중학생이 되었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지 말도 적고 아빠와 놀이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소통불가다.

둘째는 고3이다. 대한민국 고3들이 그러하듯이 대화는커녕 얼굴보기도 힘들다. 아빠는 회사에서 데스크를 맡고 있어서 업무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둘째는 둘째대로 입시에 대한 중압감과 고3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 그런 우리집안에 스트레스 두덩어리가 만나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졌다. 사진을 매개로 누구보다도 잘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 같은 주제로 대화하며 같은 곳을 바라보고 그 결과물을 함께 공유하는 소위 소통을 하게 된 것이다.

단지 산책을 하면서 함께 사진을 찍은 것 밖에 없는데 30년도 더 차이가 나는 고3인 아들과 절친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돌이켜 차분하게 생각해 보았다. 시작은 단순했다. 고3인 둘째 아이의 스트레스를 조금은 덜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우스개말로 자식을 대학에 잘 보내려면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 다음으로 아빠의 무관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 부문에서 사실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아이들한테 쿨 했다. 그저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용돈 말고는 딱히 없었다.

그런데 지난겨울, 일요일 새벽, 스트레스에서 나보다 한 수 위인 둘째 녀석이 새벽산책을 따라 나선 것이다. 아빠의 사진 찍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녀석이 자기도 찍어보고 싶다고 했다. 회사에서 쓰는 큰 카메라를 쓰던 둘째에게 격려 차원에서 조그만 DSLR을 선물했다. 이렇게 우연하게 시작된 둘째와의 휴일 사진산책이 겨울에서 봄, 여름을 지나 가을로 이어졌다.

특별히 사진에 대해 가르친 것이 없지만 둘째는 함께 산책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 동안 사진에 대해 하나씩 이해하게 되었다. 지난 20여년간 사진을 직업으로 해오면서 너무도 당연해 그냥 지나쳐왔던 것에 대해 둘째의 질문을 통해 나도 새롭게 알게 되고 배워나갔다. 

 발 밑에 핀 꽃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보기위해 함께 공원 바닥에도 엎드려 보고 청설모를 찾아 지칠때까지 공원 구석구석을 돌아다녀봤다. 옹이를 통해 아이가 힘들어했던 일들을 이해 할 수 있었고 길양이를 통해 아이가 간직한 아름다운 심성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다. 산책을 통해 사진을 배우고 사진을 배우면서 아이는 한 단계 성장해 갔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함께 하면서 아이의 성장에 동참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지난 2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2년여의 투병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나의 화두는 월 다잉이었다. 어느덧 삶의 목적을 잃어버렸고 삶을 잘 마무리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에 몰입했었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성장이 없었다. 아니 무의미해 보였다. 하지만 둘째아이와 함께 한 사진산책을 통해 그 동안 저 밑바닥에 쳐 박혀있었던 사진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고 삶에서 성장하고 변화하기를 바라는 삶의 목적에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둘째 아이와 소통을 통해 함께 성장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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