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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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3-6(눈꽃세상)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3. 15:35

<준우>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혔다. 밤새 내린 눈이 모든 걸 뒤 덮었다. 베란다로 내다 본 세상은 멀리 보이는 지평선을 경계로 하늘색과 하얀색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니 잠시동안 입시로 바쁘고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해 지는 듯 했고, 한동안 책상에만 놓여있던 카메라를 꺼내들고 아빠를 깨웠다. 아빠와 함께 하는 올해 마지막 사진 산책을 나섰다.

바스락, 바스락, 바스락. 이른 아침 산책길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고, 내가 내 딛는 한발, 한발이 연신 발자국을 만들어 냈다. 주변을 둘러보면 세상은 온통 눈으로 덮혀 있었다. 늘상 보던 눈, 늘상 보던 광경들이였지만, 이렇게 일찍 나와서 밤새 내린 눈이 모든 것을 덮은 광경을 본 것은 처음이였고, 신비로웠다. 그리고 그 신비한 모습들을 사진으로 더 아름답게 담기 위해서 아빠가 찍는 구도를 따라하려고 애를 썼다. 해가 뜨면서 눈이 부실정도로 모든 풍경은 더 빛났다. 하지만 파인더로 찍힌 사진을 보니 전체적으로 어둡게 나왔다. 

 

아빠와의 사진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던 무렵, 눈에 뒤덮인 철쭉들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서 아빠도 카메라를 꺼내서 철쭉을 찍었다. 눈 덮힌 철쭉들을 햇빛 앞에다 두어 역광으로 그 사진을 찍던 아빠에게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말을 걸어 왔다.

“이렇게 찍어보세요. 참 예뻐요”

들고 계신 카메라 기종을 보아 사진 찍기를 취미로 하시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분이심이 분명했다. 그런 아마추어 분께서 프로인 아빠에게 구도를 가르쳐 들려고 하는 상황이 나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뜻밖에도 아빠는 그 아마추어 분께서 알려주신 구도대로 사진을 찍으려고 철쭉 꽃 뒤까지 내려가 자세를 낮추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빠는 아마추어 분들에게도 배우는 것이 많다고 말씀하시며 나에게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진은 푸른 하늘과 눈 덮인 철쭉꽃을 순광으로 한 프레임에 담은 사진이었다. 아마추어 분이 알려주신 구도로 담은 사진, 그 사진은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사진 안에 온통 눈으로 덮혀있는 철쭉 꽃 위에, 쌓인 눈이 새로운 꽃을 피우는 듯한 모습이 보이는 듯 했다. 참 신기했다. 봄에 꽃을 피우고 겨울에 꽃을 떨구고 이제는 눈에 덮혔듯이 내 바쁜 1년도 이제는 모두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눈에 덮힌 그 철쭉 꽃 위에 쌓인 눈이 새로운 ‘눈꽃’을 피웠고 그 눈꽃은 내게 초심을 잃지 말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일어나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다.

지난 1년은 참 바쁜 한해였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하루하루 정신없이 보냈지만 아빠와 사진 산책 덕분에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이 사계절이 변화해 가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아마추어 사진작가분이 아빠에게 이런 구도를 추천해준 것도, 그리고 그 구도로 찍힌 사진 안에 철쭉꽃이 내게 이런 메시지를 전해준 것도, 다 우연이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추어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는 아빠의 말은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렸고, 철쭉 위에 핀 눈꽃은 새로운 시작을 하라는 메시지로 전해졌다. 아마 이 꽃과 아마추어 분과의 마주함은 1년을 마무리 하고, 1년간 아빠와의 산책을 마무리하는 아빠와 나에게 내린 하늘의 선물이 아닐까..

하얗게 덮인 세상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꽁꽁 얼어붙은 손과 발을 녹이며 나는 내 책상 위에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책상 주위를 바라보았다. 벽에 붙어 있는 당찬 포부를 적어놓은 “열심히 하자!”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린 무수한 “프로젝트, 자기 소개서, 입시 등등…” 폴더들, 그리고 1년간 사진기에 담아온 사진들까지.. 나는 오늘 찍은 철쭉 눈꽃을 마지막으로 내 1년간 아빠와의 사진 산책 사진 모음 폴더를 장식하였다. 왠지 모를 허무함과 쓸쓸함이 밀려왔지만, 나는 이 사진이 마지막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임을 알기에,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버린 눈들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함을 알기에, 더 나은 내일,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에, 나는 가슴 한켠이 다시 설레어 왔다.

 


<아빠>...한해 마무리 사진산책을 나서며


준우야, 지난 1년간을 마무리 하는 사진산책을 나서던 날 눈이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렸지. 아직도 아빠는 아직도 철이 들 들었는지 눈만 보면 마냥 좋더라. 함께 나서며 엘리베이터 거울속에 비친 아빠와 준우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 비장한 심정으로 마치 은행을 털러가는 강도 같았어.

 

늘 지나다니던 공원길도 함박눈에 덮히면 처음 와보는 것처럼 새롭게 보이지. 을씨년스런 겨울의 풍광이 한순간 마술을 부린 듯 동화속 나라에 온것처럼 바뀌고 부지런한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의 미소에 함께 미소짓게 되지.  주인과 산책나온 강아지는 좋아서 어쩔줄 모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자기 발자욱을 만드는데 정신없지. 새하얀 눈속에 드리운 아빠와 너의 그림자가 오늘따라 더 다정하게 보이는구나.  

 

오늘 준우가 찍은 사진을 보니 해가 뜨기 전에는 사진들이 멋지게 나왔는데 해가 뜨고 나서는 전반적으로 어둡게 나왔지. 왜 그랬을까? 그건 준우 눈이 부신것처럼 카메라도 눈이 부셨던거야. 카메라에도 우리 눈처럼 노출계가 내장되어 있는데 피사체 주변에서 밝게 빛나는 눈 때문에 촬영대상을 실제보다 더 밝은 것으로 인식한거야. 따라서 준우가 찍은 사진들이 노출부족으로 눈으로 본 것 보다 어둡게 나온 거지. 해결책은 간단해, 노출을 적정노출보다 한스텝 더 주는 거지. 하지만 이것도 포토샵 작업을 통해 간단하게 보정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할 것 없어, ㅎㅎ 

공원 어디를 가도 나무 가지마다 멋진 눈꽃을 피웠지만 역시 철쭉 가지에 핀 눈꽃이 제일 아름다웠어. 마치 어릴 적 들녘에 핀 목화꽃 같았어. 철쭉에 가만히 귀 기울이면 생명의 수런거림이 들려올 것 같았지. 오늘 아빠에게 자신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새로운 앵글을 소개한 아저씨를 보면서 준우가 좀 의아해 하는 것 같은데 아빠는 그 아마추어 작가분이 무척 고맙더라. 늘 보던 사물들도 앵글을 달리하면 새롭게 보이는 법. 그분이 가르켜 준대로 앵글을 달리해서 보니 전혀 새롭고 멋진 사진이 방긋 웃고 있었지. 

 

<img src=http://www.ufokim.com/data/20130813_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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