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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3-4(사진은 내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길양이)

진목토우 2017.07.03 15:27

<준우>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어김없이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애타게 엄마를 찾는 그치지 않는 울음소리에 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온다. 장정 4명이나 있는 우리 집에 왠 아기 울음소리? 혹시 늦둥이? 애석하게도 계속 들려온 우는 소리는 다름 아닌 길냥이들이 밖에서 내는 소리였다.

길냥이는 길거리의 ‘길’과 고양이의 애칭인 ‘냥이’가 합쳐진 합성어이다. 하지만 그 귀여운 억양과는 반대로, ‘길냥이’는 아주 가슴 아픈 뜻이 있는 단어이다. 집에서 길러지다가 이사, 정리 등의 이유로 밖에 버려진 고양이들을 길냥이라고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모든 동물을 ‘he’나 ‘she’가 아닌 ‘it’으로 표현을 한다. 이는 물건을 지칭하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기르던 고양이를 불쌍한 길냥이로 전락시켜버린 사람들은 그들의 버릴 ‘짐’과 ‘고양이’들을 물건으로 동일시하여 “Throw IT away” 한것인가? 비록 말은 하지 못하지만, 우리와 똑 같은 소중한 생명인데, 어떻게 물건 취급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다음 날 아침, 나는 카메라를 들고 집 앞으로 나가보았다. 한참 걷다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발견한 것은 바르르 몸을 떨고 있는 작은 길냥이였다. 길냥이와의 낯선 조우.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라고 연신 마음속으로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이미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입어버린 그 길냥이는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다. 행여나 도망갈까, 나는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길냥이의 눈과 내 카메라의 렌즈가 만났다.

 


체념. 그것은 분명 체념이였다. 동공은 분명히 경계하며 흔들리고 있었지만, 나는 그 눈 안에서 길냥이의 기나 긴 울음 끝에 지친 그 체념을 본 것 같았다. 그 길냥이는 도망가기는커녕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 하며 가만히 있었다.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을 대로 입어, 이제는 아예 체념해 버리는 단계에 이른 것일까. 모든 생명은 태어난 그 순간부터 “삶에 대한 의지”가 있어야 하는 게 정상 아니었나? 나는 조심스레 셔터를 눌렀다.
       
내가 아빠한테 사진은 왜 찍을까? 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아빠는 “내가 마음이 가니까 찍는 것”이라고 했다. 그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었다. “마음이 가니까 찍는 것이라니.. 그럼 내가 갑자기 사과를 찍으면 그것도 내 마음이 가서 찍은 거야?” 라고 물었을 때 아빠는 아무 말 안하고 웃음으로 대답하였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마음이 가니까 사진을 찍었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나는 내가 길냥이를 그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도둑고양이로 보지 않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동정하는 마음이, 그 측은한 모습조차 볼 수 없을 때가 올 것이 두려워 그 모습을 간직해두고 싶은 마음이, 그리고 혹시 이 사진을 보고 그런 진심이 전달되어 그들의 생각에도 변화가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길냥이한테 가서 사진을 찍은 것 같다.
       
나는 다음 날 혹시 그 길냥이가 또 있을까 하는 마음에 집을 나와서 집 주변을 뒤져보았지만, 어디에서도 그 길냥이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어디에서 또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건 아닌지, 귀를 조심스레 기울여 보았지만 들리지 않았다. 나는 어제 찍은 그 사진을 다시 보며 내 마음이 가서 찍은 이 사진, 이 사진을 보고 다른 사람한테도 내 그러한 마음이 전달되어 그 들도 길냥이에게 마음을 가게 하고 싶다. 이 세상에 남아 버림받은 상처와 굶주림에 고통받는 길냥이들이 있는 한 나는 마음이 갈 것임을 알기에 사진을 계속 찍을 것이다.       

 

<아빠>

이른 아침 산책길에 까치들이 난리가 났지.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아파트 테니스장 옆 나무 위를 고양이 한 마리가 기어오르고 있었지. 아마 나무위에 둥지를 튼 까치들이 고양이가 기어오르니까 위협을 느끼고 그 난리를 쳤던 것 같아. 사진을 배우면서 늘 길냥이(집에서 버림받은 고양이)들을 찍어보고 싶다던 너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나무위에 올라간 길냥이를 찍을 수 있었지. 너의 순발력에 아빠도 놀랐지. 갑작스런 인기척에 길양이는 순간 자취를 감추었지만 준우의 사진기에는 멋진 모습의 길냥이 한 마리가 자리 잡았어. 너의 오랜 소원이 이루워진 것을 축하한다.

 

                                              
준우가 이렇게 길양이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가 우연히 아파트에 버려진 어린 고양이와 눈을 마주하면서 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아. 아가가 엄마와 눈을 마주하면서 서로 깊은 사랑과 신뢰가 싹트듯이 눈이 마음의 창이기에 눈과 눈이 마주할 때 서로에 대해 깊은 이해와 감정을 공유하게 되지.    

영국의 작가 존 버거는 <왜 동물을 보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우리는 동물의 눈을 바라보며 그들과 공감하고 그들의 감정을 엿보며 때론 동일시하게 되어 최소한 그들이 우리와 비숫한 감정과 고통 그리고 존엄한 생명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그 순간 인식하게 된다고 했어.

지금도 그렇지만 아빠는 소의 크고 그윽한 눈망울이 너무 좋아. 어릴 적 아빠도 시골집에서 기르던 소와 날마다 눈을 마주하며 무언의 대화를 했는데 어느 날 그 소가 없어진 거야. 나이가 들어 소시장에 내다 팔아다는 할머니 말을 듣고도 몇일을 소를 생각하면서 울었던 적이 있어. 그런 아픈 기억 때문에 아빠는 길양이등 불쌍한 돌물을 보면 일부러 눈을 외면해 왔었는데 준우가 아빠의 오랜 동안 숨겨진 감성을 일깨워 주었네.

그러고 보니 아빠도 신문에 ‘생명을 찾아서’를 연재하면서 재미있던 일화가 있었어. 지난 1993년 여름 신문에 등장 후 보신탕집에 끌려가려다 ‘대학생이 된 누렁이’ 사건이었어.


2003.8/충북 영동

당시 아빠가 썼던 글을 잠시 소개하면...

“지난주에 산골 오지주민들의 여름나기 취재를 위해 충남 금산 사기막골에 갔었습니다. 마을을 둘러보다 좁은 철창 안에 갇혀있는 누렁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낮선 사람을 보고도 짖을 생각도 하지 않는 누렁이는 세상을 체념하듯 보였습니다. 촛점 잃은 눈으로 이방인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되도록 누렁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서둘러 사진을 찍고 돌아섰지만 카메라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온 누렁이의 슬픈 눈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중략”

준우야 그 후 이 누렁이는 어떻게 됐을까? 이 누렁이의 슬픈 눈 사진이 신문에 소개된 후 경북외국어대 총장님이 충청도 오지마을에서 이 누렁이를 데려다 교내에 생명동산이란 동물쉼터를 열어 동물대학생 1호로 누렁이를 입학시켰지. 이 사건은 당시 지역방송에도 나면서 세간에 큰 화재를 불러 일으켰지. ㅎㅎ 

이런 아빠의 기질을 이어받아서인지 너도 어릴 적부터 유난히 동물을 사랑했지. 준우야 기억나니. 우리가 일산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서 집에서 기르던 새 한 마리가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너는 그날 일기장에 새대신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하게 기도했고 새장 옆에서 잠이 들었지. 엄마 아빠는 그 때 너의 모습을 보면서 준우의 아름다운 마음에 함께 마음이 따뜻해졌단다. 다음날 아침 기적적으로 새가 활기를 되찾자 너는 뛰듯이 기뻐했었어. 한 달을 우리 곁에서 더 살던 그 새가 숨을 거두자 너는 아파트 앞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면서 십자가를 만들어 기도를 하며 한동안 눈물을 멈추지 않았지. 그 때 그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준우가 만들어갈 따뜻한 세상에 대한 기대를 한껏 했었지.
                  
준우야 사진을 ‘내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해. 준우가 사진을 배우면서 길냥이들을 찍고 싶어 하는 것은 어릴적부터 동물들을 사랑하는 준우의 무의식이 길양이라는 대상을 만나 그 마음을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일거야. 물론 길양이를 발견한 건 준우의 눈이고 사진을 찍은 것은 준우의 손가락이지만 눈과 손은 마음의 지시에 따른 것이기에 결국 준우의 마음이 길냥이를 찍었다고 할 수 있지. 그래서 좋은 사진은 좋은 눈에서 나오고 좋은 눈은 결국 좋은 마음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어. 아빠가 장담하건데 준우는 누구보다도 좋은 눈과 마음을 가졌기에 훌륭한 사진작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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