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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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3-3(성장을 위한 아픔...옹이)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3. 15:25

<준우>

시험을 망쳤다. 내가 자신 있어 하던 사회 과목이었지만, 답은 신기하게 내가 찍은 선택지만 빗겨 나갔다. 평소에도 시험을 망친 적은 꽤 있었지만, 그때는 친구들과 웃어 넘기고 금새 극복하던 나였지만, 유달리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자신 있었던 사회 과목을 망치니 몹시 속상했다. 학교에서 채점을 하면서 시험지를 찢어버렸다. 아직 남은 시험을 위해 도서관을 가자는 친구들을 뿌리치고 무작정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얼마 전 열심히 공들여 제출한 환경 독후감 결과 발표가 남아 있어서, 꿀꿀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내심 기대하며 나는 컴퓨터를 켰다.

        수상자 명단을 찾아보고 다시 찾아봐도 내 이름 석자는 보이지 않았다. 심장이 쿵 하고 가라앉았다. 이 또한 역시 평소 같았으면 “에잉, 다음에 도전하지 뭐” 라며 쿨하게 넘겼을 나였지만, 3일을 밤낮으로 책을 읽고 악필을 알아보게라도 쓰려고 노력하며 써냈던 독후감이었기 때문에 기대를 많이 해서 상심은 더 컸다. 시험도 망치고 상도 못 받고…물을 마셔도 가슴 한편이 아려왔다. 다음 날도 시험이 남아있었지만, 도저히 공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내 몸을 침대로 던져버렸다.
       
        1시간쯤 잤을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위해 내가 얼마 전에 후원을 요청했던 곳이었다. “죄송합니다. 기명 후원, 재정 후원 둘 다 어려울 것 같아요”……허탈했다. 그냥 얼이 빠졌다. 내가 5개월간 공들여 준비해온 프로젝트였고, 재정 후원만 받으면 모든 것이 완벽해 지기 바로 직전에 거절을 당했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던 곳이 였는데… 지난 내 5개월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험을 망치고, 공모전에 떨어지고 후원을 거절 받고.. 이렇게 3연타를 얻어맞은 나는 정말 왜 이런 시련을 주시냐며 신을 원망했다. 짜증도 막 나고, 진짜 앞으로가 너무 막막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 던지고 무작정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밖으로 나오자 푸른 하늘과 싱싱한 나무들이 나를 맞이했다. 이런 내 심정과 마음을 아는지 마는지 하늘은 야속하게도 그 어느 날보다 맑고 푸르렀다. 무작정 걸었다. 근데 무작정 걸으면 걸을수록 아까 일이 계속 떠올라서 신경질적으로 옆에 있는 나무를 발로 차버렸다. 쌍욕이 나왔다. 이제는 마음뿐만 아니라 발도 아프기 시작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지...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어서 나무에게, 그리고 내 자신에게 실컷 욕을 해댔다. 한바탕 욕을 하니 속이 조금 후련해지는 듯 했다. 그러다가 나는 나무와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 나는 흠칫했다. 나무의 ‘옹이’였다. 지난 봄 산책할 때 아빠가 해주신 설명이 생각났다. “나무들이 더 크고 무성하게 자라기 위해서 중간에 난 가지들을 잘라준다. 그래서 이런 상처들이 난 건데, 이 상처들을 옹이라고 하는 거야. 이 나무들은 다 ‘옹이’의 아픔이 있었기에 이렇게 웅장한 나무로 성장할 수 있던 것이지” 그땐 대수롭지 않게 보였던 옹이들이 다시 보였다. 옹이들이 ‘나는 역시 안 될 운명인가’라고 자책을 하던 나를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야 아빠가 산책할 때 설명했던 옹이의 참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옹이를 보고 있자니 어쩌면 지금 나에게 닥친 이 시련들은 나의 ‘옹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성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내 ‘운명’이 나를 위해서 이런 시련을 손수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니, 이 쓰디 쓴 시련들을 인내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그리고 이 시련들을 딛고 일어나 다시 열심히 산다면 언젠가는 나도 이 나무처럼 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길을 계속 걷다 보니 이런 옹이를 지닌 나무가 한 둘이 아니었다. 모든 나무들이 ‘옹이’를 지니고 있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나무들처럼 옹이를 갖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에 얼른 돌아와서 가방을 챙기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pb준우>

<아빠>

 준우야 우리가 사는 호수마을의 공원길에는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쭉쭉 뻗어 있지. 하나같이 어찌나 꼿꼿하던지 구불구불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 그 친구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면 나무 밑둥부터 곳곳에 가지가 잘려나간 상처들의 결정체인 수많은 옹이를 볼 수 있을 거야. 지난 봄 너는 이 징그러운 것이 무엇이냐고 아빠에게 물은 적이 있지. 그때 아빠가 마치 사람의 눈을 닮은 이 옹이들은 성장을 위한 아픔의 흔적들이라고 미주알고주알 설명을 했지만 아마 소귀에 경 읽듯 별 관심이 없었을 거야. 그러던 준우가 그 옹이를 통해 한층 성숙해졌구나. 정말 대견하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아득한 옛날이지만 아빠에게도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은 참으로 힘들었어. 쌍코피 나게 공부도 했지만 방황과 좌절도 수없이 많이 했지.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들어갔지만 대학은 고등학교 때보다 더 큰 고민과 방황을 안겨주었지. 이성문제로 수많은 날들을 밤을 새우며 고민하고 강제입영으로 전방부대에서 X뺑이 치고 다시 복학해서는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많은 날들을 하얗게 새우기도 하고...돌이켜 보면 인생은 부처님 말씀처럼 끝없는 ‘고통의 바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 하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 고통은 훨씬 덜하게 되고 극복할 수 있는 사소한 장애물에 지나지 않게 되지.

아빠가 옹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일산으로 이사 오고 난 다음해로 기억 돼. 사진기자의 생명은 무거운 카메라 장비를 들고 어디든지 출동할 수 있는 튼튼한 허리와 다리데 그해 건강에 이상신호가 찾아왔어. 걷기 있기 힘들 정도로 오른쪽 다리에 통증이 찾아 온거야.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으니 사진기자들의 고질병인 허리디스크가 찾아 왔어. 직업을 바꾸어야겠다는 의사의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되고 많은 시간을 방황하게 되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내던 어느 날, 호수공원에서 사람 눈처럼 하고 아빠를 바라보던 자작나무 한 그루를 만났던거야. 그 옹이를 한동안 바라보자 그 자작나무가 아빠에게 발을 걸어왔어.

 


“ 너 많이 힘들었구나.”
“응…………………………..”
“나도 많이 힘들었어…
 하지만 지금은 내 몸의 상처가 세상을 보는 눈이 되었어.”

한동안 그렇게 나무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졌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서로 상처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오랜 친구처럼 큰 위안이 되었던 것 같아. 그 후 아빠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고 새로운 삶의 활력을 얻어 차츰 건강을 회복하고 절운동을 통해 허리 디스크도 극복할 수 있었지. 호수공원 산책길에 만난 자작나무 옹이와의 인연 덕분이지.

그 후로 아빠는 나무의 옹이를 볼 때마다 나무가 성장하면서 겪었을 아픔을 생각하게 되었고 더 크고 멋지게 자라도록 옹이를 쓰다듬어 주곤 한단다. 준우도 살아가면서 많은 옹이를 만들어 가야 할거야. 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잘라내는 아픔처럼 그 당시에는 무척 힘들고 괴로울지라도 그 아픔이 준우를 더욱 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밑거름이 될거라 믿어. 준우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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