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2-7(사람 눈&카메라 눈)안개 낀 날 호수공원 산책 본문

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2-7(사람 눈&카메라 눈)안개 낀 날 호수공원 산책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3. 15:10

<준우>

밤새 배가 아파서 설사를 하며 잠을 뒤척였다. 전날 밤에 먹은 치킨이 뱃속에서 부활해서 뛰어다니며 콕콕 찌르는 것 같이 아팠다. 새벽에 눈을 뜬 후 바람을 쐬러 베란다로 나갔다. 창밖을 바라보니 환상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뽀얀 안개가 바닥에 깔려서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멋진 풍경 사진들 중에서 안개가 껴있는 풍경은 훨씬 멋지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번이 찬스다. 배가 아팠지만, 멋진 사진을 위해서 이정도 복통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당장 옷을 갈아입고, 카메라를 챙긴 후 아빠를 흔들어 깨웠다.

잠이 덜 깬 아빠와 호수공원에 도착하였다. 안개가 낀 모습이 적나라게 드러나는 아파트 위에서 바라보던 풍경과는 사뭇 달랐지만, 안개 속에서 바라본 풍경은 정말 신비로웠다. 마치 공포영화에 나올듯한 광경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옆에 있는 아빠처럼 아직 잠이 덜 깨서 몽롱한 호수공원 같았다. 그 신비감에 한참 매료되어 배가 아픈 것도 잊은 채 사진 찍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때마침 옆에 호수에서 오리 두 마리가 멱을 감으러 외출을 나왔다. 가뜩이나 안개 낀 호수공원은 저 멀리 아파트, 호수, 그리고 아침에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서 충분히 멋진 그림이었는데, 마침 화룡점정을 찍듯 오리가 날라 와 주다니. “그림이다, 그림!” 이렇게 외치고 나는 호수 가까이 달려가서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실망했다. 배가 다시 아파왔다. 내가 바라본 ‘그림이다, 그림!’은 오간데 없고, 사진기 액정에 보이는 풍경은 그냥 좀 흐리고 뿌연 단조로운 사진만 있었을 뿐이었다. Iso를 높여도 보고, 모드를 바꿔서 다시 찍어도 마찬가지였다. 오리도 잘 안보이고, 산책하는 사람도 보이지도 않았다. 다시 배가 아팠다. 내가 헤매는 모습이 웃겼는지, 어느새 잠이 다 깬 아빠는 멀리서 나를 바라보며 웃고만 계셨다. 아빠가 얄미웠다. 아빠는 오늘은 무리하지 말고 근처 카페에서 따듯한 음료나 마시며 이야기를 들려준 다고 하셨다. 나는 실망감은 뒤로 한 채 아빠를 따라 갔다. 안개 낀 날에 치킨에 의한 복통, 그리고 오리에 의한 실망. 안개와 조류는 나랑은 인연이 아닌가 보다.


<아빠>

준우가 그날 고생이 많았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아빠는 숙취에 안개만큼 몽롱한 상태로 있었으니 원망 많이 했겠네. 안개는 낮과 밤의 기온차이로 발생하는데 특히 겨울의 여운을 털고 완연한 봄으로 가는 길목에서 호수공원의 안개는 일품이지. 몇 년 전 아빠가 안개 낀 호수공원의 아침을 찍었는데 그 사진이 제1회 고양시 사진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지. 다 안개와 친하게 지낸 덕분이지....ㅎㅎ
그날 준우가 호수공원에서 안개 사이로 노닐던 오리 두 마리를 담기위해 이리저리 카메라를 들이대던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하지만 뜻대로 사진이 나오지 않았는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너는 아빠에게 하소연 했지.

“아빠 왜 생각한 대로 사진이 찍히지 않아요?”

왜 그렇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진을 하면서 제일 난관에 부딪히는 문제가 바로 이 문제인 것 같아. 아빠도 사진의 세계에 들어와서 한참후에나 알았는데 그것은 ‘우리 사람의 눈은 보려는 것만 보고 카메라의 눈은 보이는 것은 다 보기 때문’이야. 잘 이해가 안가지. 아빠가 재미있는 일화 하나 들려줄게.

 

준우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빠는 한겨레신문에서 지금 다니는 문화일보로 옮겼는데 그해(1995년) 9월 6일 아빠는 경기도 가평의 한 농가로 추석 스케치를 나갔어. 물론 알고 간건 아닌데 그냥 고향내음 물씬 풍기는 사진 스케치물을 찾아 동쪽으로 계속가다 보니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라는 오지 마을에 도착했어. 마을 방앗간앞을 지나고 있는데 왠 할아버지 한 분이 한발 수레에 쌀을 실고 위태롭게 가는 모습이 보여 차에 내려서 노인분을 도와 집까지 쌀을 갖다 드렸지.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가 고맙다고 하시면서 쉬었다 가라며 할머니를 부르시는 거야. 할머니가 안채에서 나오시는데 두분의 모습이 어찌나 정겹게 보였던지 사진을 한컷 찍어 드리고 싶었어. 마침 마당에 참깨를 털러 한가득 벌려놓고 있어가지고 참깨터는 모습을 부탁드렸지. 두 분이 사시는 집도 고풍스럽고 마침 하늘도 눈이 부시게 맑아 그야말로 추석을 앞둔 스케치물로 제격이었지.

‘대처에 나간 자식들을 그리며 하며 추석을 준비하는 고향의 부모님 모습’ 생각만 해도 멋질 것 같지 않니. 실제로 멋있었어. 그런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사진이 추석을 앞둔 대한민국을 뒤흔들었지. 약간 과장이 섞였지만 사실 그랬어. 그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건데 이 사진의 푸른 하늘위에는 지상에서 상상도 못할 멋진 UFO가 찍혀있었던 거야. 프랑스 우주국에서 아빠 사진의 필름 원본을 분석한 결과 지상 4km높이에서 길이가 480m나 되고 속도가 초에 108km를 가는 지상에선 상상하지 못할 멋진 미확인 비행물체가 찍혀있었던 거야. 지금은 고인이 되신 조경철 박사님도 이 사진을 처음 보던 날 말문을 잊지 못하고 감격해 하셨어. 너도 잘 알지만 가평 UFO 사진이 바로 여기서 탄생 한 거야.

아빠는 분명히 할아버지 할머니에 포커스를 맞추고 두분의 표정을 보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아빠 카메라는 아빠가 미처 보지 못했던 푸른 하늘의 UFO를 포착했던 거지. 즉 사람의 눈은 보려는 것만 보지만 카메라의 눈을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본다는 거야.

앞으로 사진을 많이 찍어봐야 알겠지만 준우가 의도한 대로 사진을 찍는 일은 준우의 눈과 준우가 가지고 있는 카메라의 눈을 일치시키는 일이지.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의 카메라와 친해져야 하고 또한 렌즈의 특성을 잘 알아야 준우가 의도하는 대로 사진을 만들 수 있는 거야.

준우야 아빤 안개 낀 아침이 무척 좋아. 왠지 신비롭고 세상이 한 순간에 동양화의 산수화처럼 단순해지기 때문이야. 하지만 이런 날 사진 찍을 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어. 안개가 짙은 경우 시야가 흐려지고 그래서 판단도 흐려질 수 있기 때문이야. 특히 도로나 물가에서는 조심해야 할거야.

 

이날 이곳저곳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안개 가득한 아침풍경을 찍던 너의 모습을 흐믓하게 지켜보다가 도로 한 가운데서 사진 찍는 너의 모습을 발견하고 문득 걱정이 앞섰어. 오래 전
철로에서 사진찍기에 몰입하다 뒤에서 오는 기차를 발견 못해 먼저 세상을 떠난 한국일보 후배가 생각났던 거야. 사진은 나와 대상이 일치되어야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기에 사진에 몰입하다 보면 카메라 렌즈에 들어오는 세상 밖의 일들은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경우가 많지.


### 안개사진에 대하여 ###

 

안개사진을 찍을 때 너무 많은 안개가 몰려 올 때는 온통 하얗게 보이지만 바로 그 순간이 안개 사진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어. 절정의 상태에서 안개가 걷히는 순간...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개는 걷히기 시작하면 상당히 빨리 걷히기에 자신이 찍고자 하는 앵글을 미리 집고 기다리고 있다가 촬영을 하는 것이 포인트지. 안개가 걷히는 순간이라도 순광 보다는 역광 상태로 촬영해야 분위기 내기에 좋지. 촬영대상들이 검은 실루엣으로 보이는 것이 신비감을 더해 주기 때문이야. 집앞 작은 호수공원의 소나무들도 안개가 서서히 걷힐 때 검은 실루엣의 정취가 아주 멋지게 표현되지. 이때 노출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안개입자가 햇빛에 산란되면서 카메라에 내장된 노출계가 지시하는 노출이 실제보다 많이 나오니 노출을 다양하게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안개사진은 다소 밋밋할 수 있으니 화면속에 뚜렷한 대상을 앞에 집어넣어 강조를 하는 것이 분위를 위해 좋을 거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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