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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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2-10(남의 눈 의식하기..초상권)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3. 15:19

<준우>

금요일 저녁, 내일이면 주말이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신나서인지, 흥분해서 축구를 하다가 바지가 터졌다. 교복 바지 엉덩이 부분이 크게 열렸지만,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신나게 축구를 했다. 땀에 흠뻑 젖었는데, 이상하게 아랫도리가 시원해서 나중에 알아차렸지만 이미 많은 친구들이 그 모습을 봤을 생각을 하니 너무 민망했다. 후드를 벗어서 허리에 감싸고 바지의 터진 부분을 가려서 위기는 모면했지만, 민망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토요일에 책을 읽는데도 계속 그 전날의 일이 생각나서 집중이 잘 안 되었다. 어느새 해가 저물어서, 나는 모처럼 카메라를 집어 들고 밤에 사진 산책을 나갔다. 산책은 밤에도 많이 나가보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나간 적은 처음이었다. 인공 조명이 호수공원을 환히 비추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인공 조명 아래에서 땀을 흘리며 뛰는 사람들의 모습이 멋있어서,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근데 조깅을 하던 아저씨 한 분이 나를 힐끔 보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전 날에 일어난 바지 터진 사건의 민망함 때문일까? 나답지 않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찍으면 그 분들이 나한테 오셔서 어디를 찍냐고, 초상권 침해 아니냐고 따질 것 같은 생각도 괜히 들었다.

 

호수공원을 계속 걷다가 가로등에 비친 벤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도 앉아 있지 않는 벤치에서 느껴지는 쓸쓸한 고독함을 담아 내고 싶었다. 벤치부터 가로등까지 다 나오게 하려고 공원 한가운데에서 쭈그려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 근데도 괜히 남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공원 한가운데서 이상한 자세로 사진을 찍으면서 너무 무안하고 민망했다. 어제의 바지 터진 사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오늘의 출사는 오늘따라 다소 걱정스럽고 또 민망함이 느껴지는 출사였다. 앞으로 계속 사진을 찍고 싶은데, 계속해서 사람들의 초상권을 침해 할 까봐, 그리고 이상한 자세로 사진을 찍으면서 사람들의 시선을 계속해서 의식할 까봐 걱정이 된다.

 

<아빠>

 ㅎㅎ 준우처럼 괘활한 성격의 소유자도 남을 많이 의식하는 구나. 아빠가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도 사진은 특정한 사람들이 하는 특별한 일이었어. 하지만 지금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진을 즐기고 때와 장소 구분 없이 사진 찍는 일이 우리 삶의 한 부분이 되었지. 그래서 준우가 고민하는 문제는 사진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어려워하는 문제이기도 해. 더구나 요즘은 초상권에 대한 규칙도 강화되고 페북이나 카톡을 통해 무심코 올린 사진들은 순식간에 급속도로 퍼져 나가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 사생활 침해인지 아닌지 고민을 해야 할거야. 가끔 아빠도 산책길에 만나는 할머니들이 직접 기른 채소를 파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그분들에게 만에 하나 피해가 갈까봐 조심스러워하지.

특히 아빠가 다니는 신문사에서는 이런 초상권 침해 문제가 더욱 조심스럽단다. 매일매일 독자들에게 배달되는 신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유명인들의 인터뷰처럼 사전에 동의를 구하고 사진을 찍는 경우가 있지만 스케치나 스트레이트 뉴스 사진은 본의 아니게 사진에 찍힌 사람의 초상권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단다. 때문에 비판적 내용의 사진이 나오면 항의성 전화가 오기도 하고 때론 언론중재위에 제소하는 경우도 있단다.

초상권의 사전적인 정의는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자신의 초상을 촬영, 공표, 영리적 이용을 할 수 없는 권리로 자신의 초상을 조절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하는데 준우처럼 순수한 목적의 사진촬영은 별 문제가 없을 거야. 아빠가 보기에는 이런 준우의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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