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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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고향산책

아름다운 모래해변과 동화 속 정원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16:05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천리포 마을)

 

서쪽 해안가  땅끝인 북위 36도 46분, 동경 125도 8분 반도 최서단에 위치한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천리포마을. 땅끝마을 하면 으레 전남 해남을 연상케 하지만 메르카토르 도법에 익숙해진 지도상의 개념일 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원형의 지구에는 본래 위아래가 존재하지 않는다.

천리포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하다. 서울에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서산 IC를 거쳐 서산시와 태안을 거쳐 2시간 남짓 달리면 도로 양편으로 쭉뻗은 짙푸른 송림이 군데군데 펼쳐진다. 이제까지 충청남도 정경과는 사뭇 다르고 유럽의 전나무숲보다도 산뜻하다. 서해의 저녁노을과 아침안개는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천연녹색을 빚어냈다.

해안국립공원이 위치한 태안반도에서 소원면이 들어앉은 소원반도에는 그 유명한 만리포를 비롯해 천리포, 백리포, 구름포등 아름다운 해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지난 5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만리포 해수욕장은 '만리'라는 지명대로 해변의 길이가 약 2km도 넘는 커다란 반원형 모래해변이다.  ″똑딱선 기적소리 젊은 꿈을 싣고 서/갈매기 노래하는 만리포라 내 사랑---″  만리포 해안가 상점에서 흘러나오는 반야월 작사 김교성 작곡, 박경원선생의 노래속에 흘러간 시간이 정겹게 묻어난다.

만리포도 만리포지만 천리포에는 무공해 바람과 제 맛나는 생선, 순도 백퍼센트의 인심이 가득하다.  천리포에서 수평선을 바라볼라치면 케케묵은 가슴속 먼지는 수평선 멀리로 날아가고  세상사로 심드렁해진 심성역시 포근히 가라앉는다.

천리포 해수욕장을 끼고 북쪽으로 에둘러 돌아가면 조용한 어촌의 갯마을이 나온다. 마을 곳곳에서 은빛 가득한 갯내음이 물씬하다. 오후의 공터에는 갈매기가 볕에 말린 까나리를 노리고 한가롭게 앉아있다. 주민들은 갈매기를 향해 소리를 한번 질러 쫓아보지만 넉넉한 인심을 아는 갈매기는 반응조차 없다. 까나리를 한입 물고 갈매기가 바다로 돌아가면 마을은 다시 정적에 싸인다.

지난 45년에 황해도에서 배를 타고 월남해 정착한 서광규(86)노인은 천리포에  젓갈 담그는 법을 보급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천리포 특산인 까나리젓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아  80여가구의 주민들은 다른 어촌에 비해 고소득을 얼리고 있어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여름에는 우럭, 놀래미, 까나리가 가을에는 꽃게 대하등이 사철 풍부해유. 우리마을처럼 아름다운 해수욕장을 가진 곳도 없을 거구만유″  19년째 이장을 하고 있는 신태욱(49)씨는 천리포 자랑을 늘어놓는다. 송봉석(69)씨와 윤덕희(57)씨  부부는 검게 그을린 얼굴로 까나리 액젓 드럼통을 옮기고 있었다. ″돈많이 벌어냐″는 인사말에 송씨는 ″작년에는 바다도 궁했시유, IMF라 그런지 거짓말 않고 한드럼도 못해시유. 빚만 왕창 졌는데 올해는 좋아지는 것 같아유″라면서 피식 웃는다. 까나리 액젖을 손가락에 찍어 맛보던 부인 송씨가  ″이곳에서는 안잡히는 고기가 없시유″라고 거든다.

천리포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자연뿐만이 아니다. 만리포에서 천리포를 향해 해변의 파란 송림사이로 난 포장도로를 2km쯤 가다보면 담장넘어 각양각색의 꽃과 온갖 종류의 수목과 기화요초, 새들의 노래소리를 만나게 된다. 이곳이 바로 동화속의 나라를 연상케하는  천리포 수목원이다. 천리포 수목원은 세계 3대 수목원의 하나로 파란눈의 미국인 나무할아버지 칼 페리스 밀러(한국명 민병갈)씨의 한국사랑이 숨쉬는 곳이다. 지난 45년 9월 일어통역장교로 우리나라에 온뒤 한국은행에서 근무하다가 귀화한 밀러씨는 지난 62년 천리포와 첫인연을 맺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전장관 손모씨의 별장이 천리포에 있어 휴양차 바닷바람이나 쐬려고 왔지요. 바닷가를 산책하는데 웬노인이 '죽기전에 땅을 팔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더군요. 당시 돈으로 7백환을 주고 1천여평을 샀습니다. 황량한 모래언덕이 쓸쓸해 나무를 심다보니 이렇게 수목원이 조성됐습니다″

밀러씨는 당시 서울대 농대 교수였던 이창복(서울대 명예교수)씨를 찾아 다니며 '나무'를 배웠다. 국내증권회사 투자고문으로 일하며 21만평에 달하는 현재의 부지를 차근차근 매입했다. 천리포수목원에는 7천여종의 초목(자생종 30%,외래종30%,개량종40%)이 저마다 독특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목련꽃만 수백여종에 달해 세계목련학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독신으로 살아온 밀러씨는 천리포수목원을 법인으로 운영,영원히 수목원을 지켜갈 계획이다. (그러나 이 동화속의 나라는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문을 열고 반기지만 아직까지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한때 개방을 했던 적이 있지만 수목원의 아름다움에 취한 일반인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흙을 마구 밟고 다녀 나무의 성장에 방해를 준뒤 개방이 금지됐다. 그러나  교육적 목적등 방문취지가 타당한 경우는 언제든지 연락을 하면 입장이 가능하다. 041-672-9310)

천리포 마을 앞에는 닭섬(낭세섬)이라 불리는 섬이 있다. 이곳에서는 하루 두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마을 아낙들과 노인들은 닭섬까지 건너와 굴을 캐고 고동을 줍는다. 해가 바다에 가까워 질때 마을에서 바라보는 해넘이는 보는이의 몸가짐을 숙연케 한다. 땅거미가 짙게 두리운 늦은 저녁 마을 한복판에 있는 횟집에서는 동화속 나무할아버지가 수목원을 찾은 손님들과 어울려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때 가난한 어촌 마을이 낮설지가 않더군요. 왠지 꿈속에서 와본 곳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제 모든것을 걸었읍니다. 여러분! 이곳이 무지무지 사랑스럽지 않읍니까. 제 뼈를 이곳에 묻어 더욱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피울거예요″  한국인 민병갈씨의 말에 우렁찬 박수소리가 쏟아진다. 여름밤 천리포 갯마을에는 별빛이 쏟아졌다.<2002.5>

PS) 벽안의 나무할아버지 밀러씨는 지난해 정든 이곳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다.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개통후 무지 길이 맊혔던 아산방조제와 삽교천제방은 이제 먼옛날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서해안 고속도로 해미IC를 빠져 나와 서산을 거쳐 32번 도로를 타고 오다 만리포해수욕장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더오면 천리포 수목원이 나온다. 수목원을 돌아오면 바로 천리포마을을 만날 수 있다. 만리포 해수욕장을 지날때 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지역이라 입장료 1,000원을 받는다. 자세한 안내는 이장 신태욱(041-672-9164)씨를 통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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