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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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상상과 동화의 가을 소나타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09:53

- 강원 춘천 남이섬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서 자전거를 타는 가족의 얼굴이 은행잎처럼 화사합니다.
버려진 나무토막과 유리병이 뚝닥뚝닥 예술 작품이 되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토끼와 청설모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
땅에 떨어진 낙엽조차 아름다운 그림으로 변신하는 이곳에서
가족이 함께 나누는 추억은 그대로 동화가 되고 가을 노래가 됩니다.

#가을 풍경 속으로
계절이 언제 이렇게 다가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딜 둘러보아도 곱게 물든 단풍이 햇살에 눈부십니다. 허둥거리며 하루하루를 살다가 문득 바라본 창밖에는 거리에도 들판에도 가을이 불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휴일 아침, 모처럼 막내아이를 데리고 남이섬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서울에서 가까운데다가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지요. 주차장부터 인파가 넘치지만 줄지어 배를 타는 사람들의 표정이 만국기만큼이나 셀레임으로 펄럭입니다. 배로 불과 5분 거리지만  잔잔한 강물 위에 떠 있는 작은 섬이 아련하고 신비합니다. 가을빛으로 곱게 물든 섬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하는 것만 같습니다.

섬의 가을은 깊고 그윽합니다. 잣나무숲, 은행나무길, 자작나무숲 등 잘 가꾸어진 울창한 나무들이 자기만의 빛깔로 물들어갑니다. 드넓은 들판에도 잔잔한 강물에도 가을빛이 한데 어우러집니다. 한적한 길을 골라 여유롭게 걸으며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껴봅니다. 한껏 기지개를 켜며 심호흡을 하니 상큼한 공기가 몸 속 구석구석으로 빨려옵니다. 넓은 들판에는 공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아이는 카메라를 들고 잔디밭을 종종거리는 토종닭을 따라 다닙니다. 산책을 하거나 뛰어 노는 사람들의 모습은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우러져 그대로 가을 풍경을 됩니다.

#깡타와 아이들
남이섬에서의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자전거를 타고 아름다운 숲길을 달리는 것이지요. 아이들과 연인들은 두 바퀴로 달리고 가족은 네 바퀴 자전거를 탑니다.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아래서 노란색 자전거를 탄 가족을 만났습니다. 7살, 2살 유진 유리를 데리고 나온 정근훈, 김경희 부부의 얼굴이 은행잎처럼 화사합니다. 놀랍게도 거제도에서 왔다는 부부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단체로 왔는데 많이 아쉬워서요, 이번에는 천천히 오래오래 남이섬을 느끼고 싶어요.” 가족을 빠져들게 하는 남이섬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이 되면 아마도 남이섬이 또 그리워질 것 같다며 김경희씨가 환하게 웃습니다.

인파 속에서 수많은 동남아 관광객들을 보며 한류의 위력을 새삼 실감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 틈으로 다른 종족이 눈에 띱니다. 바로 타조입니다. 깡패 타조라서 “깡타”라고 불리는데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 틈으로 들어옵니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타조에게 먹이를 주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울타리나 창살이 없이 그냥 눈을 마주치며 먹이를 주고받고 서로 따라가는 장면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타조만이 아니었습니다. 잔디밭에서 토끼가 불쑥 나와 뛰어다닙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토끼처럼 뭐라고 이야기를 할 것만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오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봅니다.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신기한 걸까요.

#동화 속 상상 나라
독특하게 생긴 놀이터도 있습니다. 아기자기한 모양의 놀이 시설이 자연과 묘하게 어우러지더군요. 그곳에서 아이와 함께 하늘자전거를 타보았습니다. 화려한 단풍들이 성큼 눈앞에 다가서고 붉은 낙엽이 수북이 쌓인 지붕이 내려 보입니다. 그야말로 하늘위에서 자전거를 달리는 기분입니다. 천천히 아껴가며 타는 동안 놀이터의 기발하고 발랄한 모습과 꽃무늬가 그려진 소가 내려 보이고, 낙엽이 쌓인 레일 위로 꼬마기차가 다닙니다. 낯설지만 왠지 친근한 이 풍경은 무엇일까요. 자전거를 내려와서 나무로 깍은 피노키오 인형들을 만나고 놀이터 앞에 전시된 그림책 원화를 보면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이곳은 바로 동화 속 나라였습니다.

버려졌던 유원지가 지금의 남이섬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동화작가였던 강우현 사장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수십만 평의 캔버스를 얻는 대신 월급은 100원만 받았다던 일화는 유명하지요. 도시에서 버려지는 은행잎을 깔아서 은행나무길의 운치를 더했고, 이곳저곳에 쌓인 소주병으로 만든 이슬정원은 새로운 명소가 되었습니다. 전봇대를 없애고 전깃줄은 땅 속에 묻는 대신 우리에 갇힌 동물들을 잔디밭에 풀어놓았지요. 숙박시설의 리모델링을 화가, 공예가, 작가들에게 맡겨 방마다 제각각 개성이 넘치는 문화갤러리가 되었습니다. 신입사원을 모두 60대 노인으로 뽑아 그들의 다양한 경력을 적극 활용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습니다. 그 결과 이곳은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동화 속 상상나라가 되었습니다.

#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남이섬 곳곳에는 나무 등 재활용품을 이용한 예술작품들이 눈길을 끌고 다양한 미술품 전시와 음악 공연 등도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소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호젓한 산책길에 놓여 있는 나무 책꽂이, 낙엽이 잔뜩 쌓인 벤치 옆에 초록색 유리타일로 만든 휴지통, 앙증맞은 안내 간판, 심지어 화장실의 벽까지 모두 예술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이들 작품을 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가 저절로 나옵니다. 재료를 고르고 마음껏 상상하다가 반짝 아이디어가 나오면 열심히 작업을 했을 어느 젊은 예술가의 모습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나무 아래 떨어진 낙엽으로 누군가 노란 하트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곳에서는 떨어진 낙엽조차 아름다운 그림이 됩니다. 그 그림이 한참동안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뒤집어 놓고 보면 즐거운 놀이가 될 수도 있지 않을지……. 이제는 배를 타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어른도 아이도 꽉 짜인 시스템에서 또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겠지요. 비록 짧은 한나절 동안이었지만 기발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나라에서 낙엽을 밟으며 뛰놀고, 토끼와 이야기하고, 흙으로 무언가를 만들며 즐거웠던 추억은 마음속에 남을 것입니다. 남이섬 앞에서 인어공주가 멀어져가는 배를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엉뚱하고 유치하고 천진난만한 생각이 만드는 남이섬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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