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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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동강의 새가 되어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7. 14:55

- 강원도 정선군 칠족령

 

눈물이 나려고 한다. 칠족령에서 바라본 동강은 맑은 햇살 아래 온전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아득한 산줄기 사이로 강물은 산굽이를 에워 돌고, 산은 강줄기에 제 몸을 내주며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산을 만나 굽이치고 휘돌아가는 물줄기와 깎아지른 푸른 절벽이 어우러지는 평화로운 풍경에 나는 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일까.

그동안 몇 차례 동강에 들렀었다. 비오는 날 동강을 유유히 헤엄치던 비오리 가족들, 소사마을의 높다란 황토 담배 건조막, 그리고 강물을 사이에 두고 두 마을 사이에 줄배를 띄워 건너가던 풍경은 모두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 옛날 험한 물살에 목숨을 걸고 뗏목을 나르던 뗏꾼들의 아라리 가락도, 동강댐을 둘러싸고 들끓던 그 많은 소리들도 강물에 실려 떠내려갔지만, 억겁의 세월을 무심히 흘러가는 푸른 강물과 눈앞에 우뚝 서있던 절벽들은 막연한 그리움이 되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하나 가릴 것 없이 탁 트인 칠족령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동강의 풍경은 평지에서 바라보던 강물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강변을 따라 걷거나 자동차로 달리면서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세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강물을 만났다면, 전망대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물줄기의 굽이굽이는 동강의 구구절절한 삶으로 다가왔다. 칠족령 능선을 오르는 내내 마음이 설레었다면 정상에서 눈 앞 가득 펼쳐진 동강의 전경은 처음에 당혹스러웠다. 누군가의 굴곡진 삶의 굽이굽이를 예상치 않게 훔쳐보는 심정이었기 때문이다.

당혹감은 곧 알 수 없는 뭉클함이 되었다. 흐르다가 산에 막히면 돌아가고 다시 흐르다가 산에 막히면 또 휘돌아가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채 흐르는 동강은 마치 삶을 달관한 사람의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 가식도 꾸밈도 없이, 있는 그대로 당당한 모습과 새파랗게 굽이치는 원초적인 삶의 빛깔이 더욱 그랬다. 끊임없이 오르려 애쓰고 원하는 목표를 향해 고군분투하느라 지친 내게 강물은 속삭였다. 수없이 굽이치고 에돌아 흐르면서 그렇게 점점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삶은 그런 것이 아니냐고……. 나는 강물이 열어 보이는 순하디순한 삶 앞에서 그만 눈물이 났다.

칠족령에서 문희마을로 내려와 동강의 물소리를 들으며 선녀(?)가 차려준 점심을 먹었다. 문희마을에는 선녀와 나무꾼이 살고 있다.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문희농박의 정선녀씨와 우문제씨 부부이다. 이십여 년을 문희마을에서 동강을 지키며 살아온 그들이다. 칠족령에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다가 부부는 일곱 살 때부터 칠족령 가이드로 관광객들을 인솔했던 아들 이야기를 하며 얼굴에 빛이 난다. 아빠와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백운산을 오르내리던 동강의 아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었다. 원주에서 자취를 하는 두 아이 생각에 잠시 선녀씨의 눈빛이 흔들린다.

갈 때마다 한사코 점심값을 받지 않으려해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진다. 한 번은 설거지를 돕다가 선녀씨의 빠른 손놀림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내 화장한 뽀얀 얼굴이, 둔한 손놀림이, 점심값을 내고 빚지지 않으려했던 내 뻔한 속마음이 그랬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선녀씨는 민박을 하고 손님들 식사를 준비하고 뒷산의 밭에서 농사를 짓는다. 거친 손과 그을린 얼굴에 맑은 눈빛을 한 부부는 세상이 변하고 주변이 변해도 늘 그 자리에서 강물이 보여주는 순하디 순한 삶을 한결같이 보여주고 있었다.

내게 동강은 그랬다. 더 오르지 못했다는 회한과 기를 쓰고 오르려는 욕심으로 가득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산다는 것은 오르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라고, 살면서 겪었던 시련은 굽이가 되어 휘돌아가고, 아픔과 상처는 여울지다가 다시 잔잔히 흐르는, 그렇게 저마다 자기만의 강줄기로 흘러 흘러 바다로 가는 게 인생이 아니냐고 내게 말해주는 듯 했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는 부부의 모습 위로 한 마리 새가 날아오른다. 구불구불 동강 백리 길을 날아가는 저 새는 강물의 유장한 흐름을 지켜볼 수 있겠지.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때로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풍경처럼 바라볼 수 있다면, 자신의 강을 높이 나는 새가 되어 살아있는 생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면, 굽이굽이 흘러온 우리네 인생을 후회도 욕심도 없이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내 강을 높이 나는 한 마리 새가 되고 싶다.

 

찾아가는 길

칠족령에 오르려면 먼저 문희마을을 찾아가야한다. 동강 중에서도 가장 오지로 손꼽히는 문희마을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로 새말이나 장평 나들목을 이용해서 평창 읍내로 들어온다. 평창에서 정선방향 42번 국도를 타고 미탄면을 지나면 진탄나룻터라는 팻말이 나온다. 동강 강줄기따라 4Km 정도 들어가면 문희마을이다. 문희마을에 백운산 등산 안내도가 나오는데 바로 옆의 샛길로 오르면 칠족령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자세한 내용은 문희농박(033-333-9435)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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