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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자가격리 8일째다.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고 있다. 방과 화장실 거실 일부가 나에게 허락된 공간이다. ‘삼시세끼’ 받아먹으며 방구석을 서성이다 보면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고 몸과 마음이 지쳐간다. 답답한 마음에 촛불을 켜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들으며 108배를 시작한다. 피아노의 장엄한 선율이 흐르고 절 횟수가 늘면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물방울처럼 굵어진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흐르다가 방석 위에 떨어진다. 1악장 알레그로가 폭풍이 몰아치듯 끝나가면서 100배를 넘어섰다. 방 안의 열기는 더해가고 숨결은 거칠어졌다. 2악장 아다지오가 시작되면서 촛불을 끄고 바로 앉는다. 속삭이는 듯한 2악장을 듣고 있으면 과거로 아득히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다. 음표들 사이에 아름답게 흐르는 선율..
산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깃든 침묵 때문일 것이다. 늘 그랬듯이 지리산은 말없이 지친 마음을 보듬어 준다.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목인 경남 산청 중산리 산자락에 대숲이 눈에 들어온다. 한 줄기 바람이 대숲을 스치자 댓잎 쏠리는 소리가 청아하다. 눈을 감고 복잡한 일상들을 하나씩 바람에 날려 보낸다. 쏴아 하는 댓잎 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감미로운 향기가 코끝에 스며든다. 찔레꽃 향이다. 그 향기를 따라가다 대숲 끝자락에서 찔레꽃을 따고 있는 전문희(58) 씨를 만났다. 차를 만들기 위해 꽃과 새순을 따고 있다. “찔레꽃 향기는 내 어머니 체취 같아요.” 찔레꽃이 필 때면 유독 어머니가 그리워진다는 전 씨는 하얗게 피어난 꽃을 보면 산자락 어디를 가도 어머니가 반갑게 맞아 주는 것 같다고 한다. 그녀의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