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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삶의 에너지가 바닥날 때 전통시장은 좋은 에너지 충전소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보면 새로운 삶의 의욕이 일곤 한다. 그중 꽃시장은 향기까지 덤으로 주니 일석이조다. 꽃장사 대목이라는 졸업식 시즌이라 남대문 꽃시장에 많은 사람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인적이 뚝 끊긴 채 향기로운 침묵만이 흐른다. “가장 바쁜 철인데 이러고 있네요. 작년만 해도 견딜 만했는데 올해는 너무 막막해요.” 30년 넘게 이곳에서 꽃과 사는 최명숙(70) 아주머니의 목소리에 생기가 없다. 계속되는 코로나19 여파로 화훼농가는 하나둘 무너지고 졸업식 등 행사가 축소되거나 비대면으로 전환돼 어려움이 더하다고 한다. 꽃 한 다발 사 들고 나서는데 코끝이 찡하다. 매서운 추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신문지에 싸인..
경황이 없어 끼니를 놓쳤다. 어머니가 시골집 마당에서 쓰러지셔서 병원 응급실까지 내달리며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입원까지 마치고 한숨을 돌리고 나니 하루해가 다 갔다. 갈증과 허기가 동시에 몰려왔다. 병원 근처 식당 구석에서 혼자 설렁탕을 먹고 있었다. 뜨거운 국물이 타들어 가던 속을 채워주었다. 몇 숟갈 뜨다가 국물 위에 떠오른 하트 모양 파 두 조각에 눈길이 머물렀다. 한동안 그 모습을 보는데 뜨거운 것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아닌 척, 괜찮은 척하며 묵묵히 견뎌왔는데…. “얘야, 괜찮다. 어서 먹어.” 고통 속에 신음하면서도 도리어 자식을 위로해 주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오늘 아침 아내가 보내준 한 장의 사진에 하루 종일 가슴이 먹먹합니다. 아내는 강남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항암치료와 연명치료를 거부한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날 때 마다 아내는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코로나로 외국에서 발만동동 구르고 있는 자식들에게 화상통화를 연결해주기도 합니다. 퇴원하면 아껴둔 술을 하자고 호기롭게 말씀 하셨는데……. 늘 묵묵하셨지만 따뜻하셨던 분입니다. 아내의 손을 통해 장인어른의 온기가 전해집니다. 아버님 사랑합니다.
마스크를 잠시 벗고 긴 숨을 들이쉰다. 공기가 제법 선선하다. 구절초 틈에서 철 지난 망초 꽃들이 강인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파란 가을 하늘을 우러른다. 재활치료를 통해 유기견에게 새 삶을 불어넣어 주는 경기도 도우미견나눔센터를 찾았다. 청명한 하늘 아래 파란 조끼를 입은 훈련사와 호리호리한 개 한 마리가 훈련을 하고 있다. 김지연(26) 훈련사와 이탈리안 그레이하운드 ‘산토’다. 지난 5월에 안산보호소에서 이곳으로 온 산토는 발견 당시 오른쪽 골반뼈가 부러져 있었다. 바로 수술했으면 치료할 수 있었지만 유기된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돼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지금도 한쪽 다리가 불편해 강아지용 짐볼 등을 이용해 훈련을 받고 있다. 이곳에 온 유기견들은 한두 달 훈련을 거쳐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고 분양돼..
달덩이 같은 호박이 해먹에 걸터앉아 느긋하게 가을 햇살을 즐기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양파 망사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딴 애들은 땅바닥에 뒹구는데 “저 호박은 좋겠다!” 하자 어머니 하시는 말씀. “큰 덩치에, 매달려 있으려면 얼마나 힘들겠냐! 그것들도 한 식군데…….” 구수한 호박잎과 애호박도 잘 먹었는데 찬바람이 나니 따끈한 호박죽 생각이 납니다. 그러고 보니 호박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 다 내어주면서 늙어가는 어머니를 닮았습니다.
폭염에 아랑곳 않고 연잎 위에서 실잠자리 한 쌍이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가느다란 몸통을 구부려 서로의 마디를 파고듭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자연의 메시지를 실잠자리가 온몸으로 전해주는 것만 같습니다. 입추입니다.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 사랑으로 채우는 가을이길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