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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 그린 세상
지난겨울 비둘기 한 마리가 제 마음속으로 날아 들어왔습니다. 날개 끝에 두 줄의 갈색 무늬가 있는 비둘기입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나무 그네에 앉아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보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종종거리며 먹이를 쪼고 있는 모습을 자세히 보니 한쪽 발가락이 모두 잘리고 발목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균형이 맞지 않는 다리로 뒤뚱거리며 이리저리 힘겹게 걷는 모습에 콧등이 시큰거렸습니다. “얼마나 사는 게 힘들었을까?” 그때부터 습관처럼 그곳에 가면 그 비둘기를 찾게 됐습니다. 가끔 마주치는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한테 뒤처지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마음이 컸는데 그 당당한 모습에 저도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하며 살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는다. 넓적한 플라타너스 잎들이 발아래에서 바스락거린다. 젊은 날 낙엽을 밟을 때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낭만을 즐기곤 했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낙엽 밟는 소리에 가슴이 시려 온다. 낙엽들이 서울시민보다 많을 것 같은 양재 시민의 숲을 걷는 중이다. “부아앙∼빰바∼.” 경부고속도로와 인접한 산책로 벤치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려온다. 자동차 소음과 섞여 들려오는 금관악기 소리에 까마귀가 깍깍 화음을 넣는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청바지를 입은 중년 신사가 악보를 보며 트럼펫 연습에 한창이다. 수북이 쌓인 낙엽 앞에서 연주하는 그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작년 말에 정년퇴직했다는 최덕하(64) 씨다. 30여 년간 교회 차량을 운행했..
‘칙칙폭폭’. 금방이라도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달려올 것 같다. 숨 막히는 일상을 뒤로하고 산책 나온 사람들이 저마다의 걸음걸이로 철길을 걷고 있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레일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가슴이 설렌다. 서울의 서쪽 끝자락 구로구 항동 기찻길이다. 산업화가 한창인 1959년에 준공돼 50년 넘게 산업화를 위해 그 소임을 다하고 지금은 시민들의 산책로가 됐다. “데이트 장소로 야외공원을 많이 찾아요.” 김현빈(38) 씨와 새리(29) 씨가 시원하게 뻗은 레일 위를 손을 잡고 걷고 있다. 어학원에서 교사와 수강생으로 만나 3개월째 소위 ‘썸’을 타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실내보다는 야외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다 보니 더욱 가까워지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
나른한 오후, 참새 한 마리가 수돗가를 기웃거립니다. 애타게 수도꼭지를 노려보던 녀석, 똑... 마침내 물 한 방울이 떨어지자 날렵하게 날아올라 물을 마십니다. 도심에 사는 참새들은 참 똑똑합니다. 수도꼭지에서 물 나오는 것도 알고... ‘언젠가는 공중화장실을 노크하는 에티켓 만점의 참새도 나오겠네.‘ 이런 터무니없는 상상을 하며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웃습니다.
- 서울시 서초구 양재 시민의 숲 비 내리는 숲은 한적하고 고요하다. 아침부터 내린 비로 나무도 풀밭도 곳곳에 놓인 벤치도 비에 젖어있다. 풀잎마다 물방울이 영롱하게 빛나고 군데군데 웅덩이에 고인 물 위에는 푸른 잎으로 가득 찬 하늘이 비춰 보인다. 빌딩과 도로에 둘러싸여 고립된 숲이지만 비오는 날, 숲은 또 다른 얼굴로 싱그러운 속살을 드러내 보인다. 비 내리는 양재 시민의 숲을 찾은 길이다. 양재 시민의 숲은 말 그대로 도심에 시민의 숲을 만들기 위하여 1986년에 조성된 공원숲이다. 서울숲이 문을 열기 전까지 서울에서 가장 큰 공원숲이었으며, 면적 7만8천 평의 대부분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간 1,636,000명, 일평균 4,100명이 찾는다는 통계상의 수치가 아니더라도 양재 시민의 숲은 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