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할배 소나무가 있는 작은빛골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고향산책

할배 소나무가 있는 작은빛골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16:02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소광리

 

소나무는 아름답다. 푸르름도 물론이지만 우리네 삶과 가까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 언제나 소나무는 온갖 어려움을 함께 겪어온 살붙이 처럼 정겹게 느껴진다.

사람이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꽂아 부정을 물린다. 사람이 죽으면 소나무 관속에 누워 솔밭에 뭍히게 된다.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일생이다.  그리고도 오랫동안 소나무는 우리와 함께 한다. 무덤가를 지키며 삶에 지쳤던 망자의 한을 달래준다. 혼령들은 은은한 솔바람과 솔빛,솔향에서 안식을 찾고 위안을 받는다. 조상들은 소나무와 더불어 나고 솔밭사이에서 뛰놀고 일하다가 소나무에 묻히는 우리의 인생을 흔히 '소나무 문화'라고 스스로 불러왔다.

경북 울진군 서면 작은 빛골(소광리)은 우리 선조들의 소나무에 대한 사랑과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마을이다. 작은 빛골에는 우리나라 소나무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빼어난 금강송이 있는 고장이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금강송은 씨가 말랐다. 일본의 벌채업자는 한반도 전역에 우뚝 솟아있던 금강송을 마구잡이로 베어냈다. 뒤틀림이나 갈라짐이 없고 벌레가 먹지 않는 금강송은 우리나라에서만 볼수있는 고유한 수종이기 때문이다. 일제의 무수한 남벌에도 불구하고 이곳 작은 빛골 1천6백ha의 숲에는 2백~3백살이 넘은 금강송이 8만그루가 남아있다. 2백년생 금강송 한 그루 값은 보통 중형차 한대 값과 맞먹는 1천3백~5백만원에 달한다. 보다 다행스런 일은 금강송의 시조격인 할아버지 금강송이 아직 울진 일대에 5그루가 있다는 사실이다. 수령만도 5백살이 넘는 우람한 소나무들이다. 일본 벌채업자들은 몸피가 우람한 할아버지 금강송을 마구 베어냈지만 요행히 이곳 울진에서 할아버지 금강송 일부가 화를 면했다. 작은 빛골의 2백~3백살된 금강송들은 모두 할아버지 금강송의 증손자나 고손자에 해당하는 셈이다.

소광리로 가는 길은 아름답다. 작은 빛골이라는 우리말 이름처럼 소나무 가지 사이로 흘러나온 빛줄기들은 맑은 개울물 소리와 뒤섞여 소광천을 이룬다. 소광리에는 개울을 끼고 70여가구가 띄엄 띄엄 자리를 잡고 있다. 36번 국도에서 소광천을 따라 4km 정도 오르다 보면 빨간 함석지붕의 아담한 오막집이 나온다. '최상운'이라는 문패가 집을 지키고 있지만 인기척은 없고 개만 연실 짖어댄다.

최씨집에서 1km정도 들어서자 버스가 뒤뚱뒤뚱 흙먼지를 날리며 마을로 들어선다. 오전과 오후 하루 두차례 소광리를 오고가는 버스다. 그러나 몇년전부터 행락철이면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 곧게 솟은 솔밭 개울가로 몰려든다고 한다.

″마, 말도마이소. 휴가철이면 첩첩산중에 사람들이 골짜기마다 넘쳐난다 아임니꺼.″

이곳 토박이를 자처하는 최대성(41)씨의 말이다. 마을에서 조그만 수퍼를 운영하고 있는 최씨의 표정에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이 싫지만은 않은 듯하다.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교. 마! 여지것 먹고살기가 힘들었지만, 나중가면 빛골이 레저로 빛을 보지 않겠는교.″

소광천을 따라 다시 1km정도를 올라가다 보면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마을 사람들이 '솔평지'라고 부르는 곳이다. 솔숲이 밭처럼 펼쳐진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지 지금은 가파른 산벼랑이나 산골짜기 안쪽에서나 소나무를 볼수 있다. 솔평지에는 3가구가 있는데 첫번째 집이 자칭 나물박사로 통하는 이 순녀(54)씨의 집이다. 오늘도 새벽같이 산속을 뒤져 온갖 나물을 캐온 이씨 아주머니가 마당 한가득 나물을 펼쳐놓고 있다.

″이 동네 아지매들이 나물하러 가믄요, 날 못따라 오니더!″

어릴적부터 이마을에서 잔뼈가 굵었다는 이씨 아주머니는 자신이 나물캐는 박사라며 함지박에 가득 담긴 나물을 보여준다.

″이건 참두릅, 저건 개두릅---. 여~있는 나물들은 다 진짜시더.″

때마침 산불예방 계도활동을 위해 소광리를 찾은 울진 보건의료원 사람들이 이씨 아주머니의 함지박에 모여들자 이순녀씨의 목소리가 더욱 신명이 나는 듯 높아진다. 이내 조용한 산골마을이 장터 처럼 시끌벅적 해진다.

선조들은 경북 봉화와 울진의 소나무를 전국에서 으뜸으로 쳤다. 최근에 소광리에서 발견된 황장금표(黃腸禁標)는 금강송의 뛰어남과 선조들의 보호의지를 말해주고 있다. '황장금표'는 이곳 금강송 몸통속이 누른 색을 띤 치밀한 재질을 가져 건축재로 가장 우수했기 벌채를 금지한다는 표식이다. 솔평지에서 2km떨어진 소광천 계곡의 바위에다 음각한 이 금표는 나라 안에서 질좋은 소나무를 찾아서 보호하고 남벌과 도벌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러나 일제의 벌채는 이지역의 금강송을 그냥두지 않았다.

″왜놈들이 얼매나 나무를 비냈던지 도끼소리가 밤낮없이 들낏다.″ 라면서 백남수(71)할아버지가 옛기억을 더듬는다. 할머니와 산에서 나물을 캐오던 백할아버지는 ″소나무 비낸 자리가 월매나 널든지 장정들 여나무시 앉아서 참을 먹을 수 있었제.″라고 말한다. 약간 과장이 섞인것 같지만 이곳 소나무가 얼마나 크고 훌륭한 자태를 가졌던지 짐작케 했다.

옛 화전민 정착지를 지나 한참을 올라 소광천 끝자락에 도달하자 5백30년의 세월을 지켜온 할아버지 금강송과 만났다. 할아버지 금강송은 비록 큰 가지가 잘려나갔지만 30m로 곧게 뻗어서 가지를 뒤튼 모습이 웅장함을 넘어서 신령스러움 마저 느끼게 했다. 할아버지 금강송 뒤편으로 2백년된 소나무들이 호위하듯 하늘을 찌를듯한 기세로 서있다. 노송의 거북등처럼 갈라진 나무껍질을 만져보니 온갖 수난속에서 묵묵히 버텨온 세월이 뭉클한 감동으로 전해진다. 오죽하면 이곳을 찾은 박노해 시인이 우리땅에 이처럼 웅장한 소나무 숲이 살아 있었다니...,이토록 당당하게 하늘로 뻗어 있었다니...라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을까.

아쉬움과 감동을 남긴채 할아버지 금강송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덧 길게 드리운 산그림자가 마을을 감싸안고 있었다. 개울가 비탈밭에는 중년부부가 쟁기질을 마치고 헐떡거리는 소를 쓰다듬고 있다. 자연속에 어울어진 이들의 모습이 솔향기처럼 은은하게 다가왔다. 

<찾아가는 길>
소광리가 있는 울진으로 가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다.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해 강릉까지 와서 바닷가를 끼고 동해와 삼척을 거쳐갈 수 있다. 또 하나는 중앙고속도로를 이용, 영주, 봉화를 통해 오는 방법이다. 울진 읍내에서 36번 국도를 이용하여 불영계곡을 구경하며 20km를 가면 광천교라는 작은 다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북쪽으로 20분 정도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개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첫집 최상욱씨 집이 나온다. 할아버지 금강송이 있는 곳까지는 최씨 집에서 10km 이상 더 올라가야 한다. 마을에서 소광천 상회를 운영하는 최대성(T:054-782-4526)씨의 친절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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