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태고의 신비가 숨쉬는 수중수림(水中水林)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고향산책

태고의 신비가 숨쉬는 수중수림(水中水林)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16:01

경남 창녕군 이방면 안리 장재마을

까막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경남 창녕군에 있는 우포늪의 새벽은 이육사 시인의  <광야> 란 시의 첫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영남 알프스의 한축을 이루는 화왕산 너머 동쪽 하늘이 부옇게 동이 트면서 밤을 감싸안고 있던 물안개가 갈 곳을 모르고 떠돈다. 수면에 그림자를 드리우던 방죽의 미류나무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태고의 적막이 삼라만상을 숨죽이게 한다. 닭우는 듯한 소리를 내며 새 두마리가 물 위의 미루나무 그림자를 가르며 날개짓을 한다. 물닭이다. 1억년 계속 되어온 우포의 아침이 열리는 순간이다. 하늘과 수면이 황금빛으로 변하자 밤새 숨죽이던 수생 동식물들이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하는 기지개를 켠다. 붕어등 수중생물들이 입질을 시작하고 늪가를 따라 빽빽한 수초도 황금빛을 받아 윤기가 흐른다.

1억 4천만년 전 한반도의 생성과 함께 태어난 우포늪은 이 땅에 사람이 살기도 전에 낙동강 일대의 지반이 내려앉고 그위에 물이 차 늪이 됐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수생식물들이 죽어 쌓인 51만평의 늪에는 부들,창포,갈대,줄,올방개,붕어마름,벗풀,연꽃 등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으며 원초적인 먹이 사슬과 생명의 신비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포늪은 동,식물만의 것은 아니다. 그 넉넉한 품에 대대로 사람들을 끌어 안았다. 어둠이 완전히 거치면서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사람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우포라는 삶의 탯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장재마을 주민들이다.

경남 창녕군 이방면 안리 장재마을은 소를 닮은 우포의 목부분에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소목마을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우포늪에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이마을 주민들은 널빤지 배를 띄우러 늪가로 모여든다. 수초와 물안개를 헤치고 널판지배 2,3척이 뜬다. 밤새 쳐놓은 그물을 걷으러 가는 배들이다. 아낙들은 허리춤밖에 차지않는 물속에 들어가 논우렁을 줍고 미꾸라지 등을 잡아올려 짭잘한 소득을 올린다.

″비만 오면 논밭이 침수돼 농사짓기가 여간 힘든기 아니라요, 농사를 맹치면 우포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거나 농고동(논우렁)을 잡아 밥묵고 살아제. 한약제로 좋다는 지머구(가시연꽃)도 돈이 됐던기라 .″ 이마을 노기팔(64)이장의 말이다.

 

우포늪 주변에는 장재마을을 포함하여 13개마을에 2천3백여명의 주민이 모여산다. 그러나 이들에게 우포늪의 명성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여름에 조금이라도 큰비가 내리면 물이 넘쳐 범람하기 때문에 농촌에 흔한 벼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그래서 가을에 씨를 뿌려 봄에 수확하는 보리농사가 고작이다. 그나마 어로작업도 우포늪이 자연생태계 보호지역 지정과 97년 람사협약등록으로 어로행위 일체 중단 위기에서 반대 시위끝에 간신히 얻어낸 주민들의 쟁취물이다.  

언뜻 보기에 우포물은 더럽다. 그러나 지렁이 한마리 살기 힘든 오염된 강줄기와는 크게 다르다. 스스로 완벽한 자정작용을 한다. 매년 여름철이면 낙동강물이 범람해 낙동강 붕어가 우포늪까지 올라온다. 그러면 장재마을 주민들은 어로행위를 중단한다. 1개월 정도가 지나면 낙동강 붕어가 우포 붕어가 되기 때문이다. 상처입고 오염된 낙동강 붕어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가 완전히 사라진다. 물가에 뿌리를 박고 사는 줄 갈대 버들이 인과 질산 등 오염 물질을 빨아들이고 산소를 뿜어낸다. 수중수림의 생물들이 정화조작용을 하는 것이다.

″우포는 애미 품처럼 마지막 남은 생태계의 자궁이라카이.″  널빤지 배로 고기를 걷던 노기열(65)씨가 자못 진지하게 한마디 던진다. 마치 물위를 산책하는 철학자 같다. 여름을 재촉하는 작은 풀벌레의 합창이 어느덧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처럼 장중하게 늪 전체에 울려 퍼지고 있다.           

<찾아가는 길>
구마고속도를 타고 창녕 IC로 들어가 1093번 국도를 타는 것이 가장 빠르다. 읍에서 늪까지 는 약 7km. 감자밭과 보리밭이 난 한적한 풀밭길이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는 1시간 간격으로, 대구 서부 터미널에서는 20분 간격으로, 부산 마산에서는 30분 간격으로 직행버스가 다닌다. 읍내에서는 주매-안리행 군내버스를 타고 기사에게 부탁하면 여러곳의 진입로를 알려준다. 자세한 안내는 우포민박 (055-532-6202)에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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