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바다에 떠있는 한송이 국화꽃 같은 섬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고향산책

바다에 떠있는 한송이 국화꽃 같은 섬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16:04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국화리
 
사람들은 휴가철이 아니어도 섬을 그리워한다. 일상을 벗어난 곳에 섬이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사막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골치 아픈 일상을 툴툴 털어버리고 한번쯤 그곳으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주게 하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 섬이다. 눈부신 백사장, 푸른 파도, 유유히 하늘을 나는 갈매기떼... 섬은 또한 상상만으로도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삶의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활력 충전소인 셈이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섬이 많다. 삼면의 바다에 모두 3천1백70개의 섬이 있다. 그 중 4백79개의 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으며 제주도처럼 큰 섬도 있지만 자연부락을 이룬 조그만 섬이 대부분이다.
  
국화도. 이름 그대로 서해 장고항 앞바다에 한송이 국화처럼 떠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이다. 주민들은 미당 시인이 노래한 국화꽃 닮은 누님처럼 수줍음을 많이 타고 순박하다. 섬의 좌우에는 썰물 때면 걸어서 갈 수 있는 2개의 무인도가 잎사귀처럼 가물가물 떠있다.
 
'부르릉---부르릉---'

서해의 작은섬 국화도를 향하는 고깃배의 엔진소리가 장고항에 힘차게 울려 퍼지자 포구 앞에 사람들이 서둘러 배에 오른다. 초여름의 햇살이 바다 한가운데서 따갑게 쬐고 선외기선 뱃전 너머로 끝물인 실치잡이 배들이 한가롭게 떠다니고 있다. 침침한 서해 물살을 헤치고 배가 쏜살같이 국화도로 향한다.

국화도는 면적이 40ha정도인 작은 섬이다. 행정 구역상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에 속하지만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충청남도에 가깝다. 그래서 국화도에 갈라치면 충남 당진군 석문면 장고항리에서 고깃배나 모터보트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가깝다. 국화도 주민들도 육지에 나오려면 꼭 장고항리쪽을 통한다.

희미하던 국화도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오자 배에 타고 있던 뭍 사람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국화도 양옆에 딸려있는 매박섬과 두지섬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진다. 김 양식을 위해 섬 연안에 가지런히 꽂아놓은 장대들이 햇살에 부딪혀 밝게 빛난다. 섬 코앞까지 다가서자 배는 시동을 끄고 조용히 다가간다. 장고항에서 출발한지 10여분.

 

선착장에 오르면 장고항리쪽을 바라보고 반듯하게 늘어선 집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민이래야 27가구 50여명이 전부다. 그나마 젊은이들이 모두 떠나고 노약자밖에 없다. 장난감처럼 앙증맞게 지어진 집들 사이에 문을 닫은 초등학교 건물이 회칠이 벗겨진 채 고즈넉이 서있다. 아이들은 뭍에서 학교를 다닌다.

섬 어디를 둘러봐도 파도소리와 갈매기 울음만 요란할 뿐 섬 전체가 고요하다. 서울에서 두세 시간도 안걸리는 가까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낙도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전기는 동네 자가발전기로 돌아가고, 그 흔한 인터넷도 아직 없다. 노을이 지고 밤이 찾아오면  하늘의 별을 헤아리거나 파도소리를 듣는 일이 유일한 낙이다. 그래서 알음알음 입소문으로 퍼져 몇 년 전부터 호적한 곳에서 야영을 즐기려는 캠핑족들에게 각광을 받는 명소로 꼽히고 있다.

군 제대후 모 정수기 영업팀장으로 근무하다 3년 전 이 섬에 찾아들어 민박업을 하고 있는 명재욱(40)씨는 ″국화도야 말로 진짜 섬다운 섬″이라고 말한다. ″제가 방황하고 있을 때 아버지와 함께 이곳에 낚시를 왔어요. 처음 섬을 보는 순간 숙명처럼 가슴에 와 닿는 매력을 느꼈지요. 뭍으로 올라온 후 바로 회사를 정리하고 이곳에서 몇 달을 텐트를 치고 마을 뒤편 백사장에서 보금자리를 꾸몄지요″

섬 주민들은 오랜 세월 동안 뭍사람들과 지리적 고립감으로 자기들끼리 단결이 잘된다. 그래서 외지인들에게 텃세가 유난히 강하다. 명씨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씨는 지난 3년 동안 주민들과의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 마을총무도 맡으면서 백방으로 뛰어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
 
무인도인 국화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6백년전이라고 한다. 한양에서 귀양온 양반이 형기가 풀린 뒤에도 그대로 눌러 살면서부터 사람이 살게 되었다고, 14대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박복만(73) 이장이 전한다. ″섬의 원래 이름은 만화리(晩花里)라고 했는디 일제때 국화도로 불렀구먼″. 꽃이 늦게 피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섬사람들이 문명의 혜택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빗대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박이장의 말처럼 국화도 주민들은 뭍 사람들이 삽교천, 아산만, 석문방조제등 거대한 물막이 공사를 벌일 때도 이런 공사들이 섬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몰랐다. 상상을 초월한 공사가 끝난 후 인근 섬 주민들에게는 처참한 결과가 돌아왔다. 지천으로 잡히던 꽃게, 광어, 도다리, 우럭 등 인기 좋은 어류들이 한 동안 자취를 감추고 그나마 고기들이 다시 나타났을 때에는 어획량이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한전 짓고, 방조제 짓고 해싸서 민물을 귀경할 수 있어야지. 민물이 들어와야 하는디, 물길이 죄다 막혀 버렸어″. 뙤약볕이 내리쬐는 바다에서 바지락을 캐고 있는 김북순(65)할머니의 푸념 어린 말이다. 옆에서 같이 일하던 신현래(73)할머니의 말은 국화도 주민들의 안타까움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섬이라 보상도 못받았시유, 해 먹고 살길 없으니까 젊은것들은 다나가구 늙은이들만 남았시유. 생각다 못해 늙은이들이 모여 핵폐기물 유치 신청을 냈는디, 여기서 반대하구 저기서 반대하구..″

″오죽했으면 주민들이 핵폐기장 유치 신청을 했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녁노을이 드리울 무렵 백사장에서 다시 만난 명재욱씨의 말이다. ″비록 문명의 혜택에선 뒷전이지만 국화도는 '서해에 아껴논 땅'이예요.″ ″주민들도 이제는 섬의 진정한 가치를 알게 된 것 같아요. 주민들과 함께 정말 아름다운 섬이 되도록 만들어 가야지요.″

명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해가 완전히 바다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검붉은 빛의 여운이 바다에 아른거린다. 갯것을 잡던 아이들도 하나 둘 돌아가고 고요한 바다 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피어오르고 있다. <2002.5>

<찾아가는 길>
국화도에는 그 흔한 자동차가 한 대도 없다. 정기 여객선도 없어 마을 사람들은 고깃배를 타고 볼일을 보러 나간다. 다행히 마을주민들이 모두 어업에 종사하고 있어 유일한 교통수단인 고깃배 한 척씩은 다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화도에 들어가려면 미리 국화도 주민에게 연락을 하든가 장고항리에서 주민들에게 배를 빌릴 수 있는 지 알아봐야 한다. 장고항에 가려면 서해고속도로 서해대교를 지나 송산 인터체인지를 빠져나와 석문방조제를 지나면 바로 장고항이다. 자세한 안내는 명재욱 씨(031-357-7311)를 통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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