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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건 도강 10분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2. 15:55

 

푸른강물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강변 언덕 위에는 옥수수밭 을 일구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보인다. 일터로 향하는 농부들의 발걸음에 시골길은 아늑하다.
그러나 그 아래 강변에는 소총을 든 북한군이 눈을 번뜩이고 있다. 강은 숨을 멈추고 있었다.
중국지린(吉林)성 허룽(和龍)현 한 조선족 마을과 함경북도 무산군을 가르는 두만강 변.
식량을 구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너는 북한 여인과 그녀를 돕는 조선족들이 10여분 간 벌인 '대탈출'의 장면이 본사 특별 취재반에 의해 목격되었다.
지난달 17일 낮 12시 15분. 조선족 청년1명이 폭 30여미터 강 건너편에 있는 북한군 병사 2명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건너오라'고 조선족청년이 외치자 이들은'비가 많이 왔어. 물살이 세서 못가'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이 청년은 담배 한갑 에 돌맹이를 묶어 힘껏 던졌다.
하급자인 듯 한 북한군병사 1명이 잽싸게 달려와 땅에 떨어진 담배를 주웠다.
조선족 청년은 다시 소시지를 던졌다.
이 병사는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시지를 군복주머니에 숨겼다.
담배 3갑과 소시지 2개를 받은 병사들은 강 하류쪽 어딘가로 향했다.
군초소 에서 강 상류쪽으로 1백여 미터 떨어진 언덕위에서 밭일을 하고 있던 중년북한남녀는 이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낮 12시 20분쯤 병사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때 였다. 언덕 위의 북한 농부는 강 건너편 중국땅 을 향해 손을 높이 들어 큰 원을 그렸다.
동시에 아낙네는 잠시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디서엔가 젊은 여인을 데리고 나타났다.
'부스럭' 중국 쪽 강변 풀숲에서는 40대로 보이는 조선족 남자가 고무튜브를 들고 나타났다.
주변을 살펴 북한 경비병들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허리를 바싹 숙이고는 잰 발걸음으로 강물로 향했다.
'텀벙' 물에 뛰어든 그는 30여미터를 헤엄쳐 강 건너편에 도착했다.
북한 농부가 언덕 아래 강변으로 뛰어내려왔다.
여자 2명도 그 뒤를 따라 뛰었다.
북한농부는 사랑이 담긴 듯 한 자루하나를 건네받으며 조선족 남자와 무언가 말을 나눴다.
무슨 부탁을 받은 듯 조선족 남자는 젊은 북한여인의 손을 잡고 뛰었다.
그녀는 강변 자갈밭 위를 달려 고무튜브에 몸을 실었다.
조선족 남자는 고무튜브를 끌며 헤엄을 쳤다.
그러나 비 때문에 불어난 강물은 매우 빨랐다. 힘껏 발을 놀렸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고무튜브를 타고 있는 북한 여인과 함께 조선족남자도 강 아래로 떠내려갔다.
'아악'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조선족 남자는 바둥 거리며 고무튜브의 방향을 바꾸려 애를 썼다. 몇 번이나 했을까.
겨우 물살에 익숙해진 그는 조금씩 고무 튜브를 중국 쪽으로 돌려 놓았다.
낮 12시 25분 '허억,헉' 처음 출발했던 지점에서 하류쪽으로 1백여미터 떨어진 중국 땅을 밞은 그들은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저 멀리 북한군 2명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조선족 남자와 탈북여인은 중국 쪽 숲으로 숨어들어갔다.
취재반이 접근하자 그 북한 여인은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말했다.
'강건너 친척집에서 3일동안 숨어 지내다 겨우 넘어왔어요. 시 부모님과 애들까지 6명식구가 몇일을 굶었는지 몰라요.죽어가고 있어요.제발 먹을 것 좀 주세요.'
이 사진은 필자에게 한국기자상과 삼성언론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1997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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