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노란 꽃 대궐속에 사는 마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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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꽃 대궐속에 사는 마을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16:00

전남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상위마을

 

남녘의 봄은 꽃들의 이어달리기로 시작된다. 섬에서 출발한 동백꽃이 바다를 건너 뭍의 동백에게 바톤을 넘기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다음주자들이 계속 이어서 달린다. 봄바람을 따라 순조롭게 북으로 이어지던  꽃행진이 지리산 자락에 막혀 섬진강 주변을 맴돌면 강자락의 광양,하동,일대가 마법에 걸린듯 일제히 겨울 옷을 벗고 현란한 색조의 매화와 앵두꽃이 강변마을을 화사하게 수놓는다.

남도의 땅으로 봄 마중 가던 날, 하늘이 꾸무럭 거리며 잔뜩 흐려있다. 겨우내 마른 대지에 한바탕 빗줄기가 쏟아지자 매화가 분분히 흩날리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산수유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트린다. 비로소 겨울의 남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진다. 산수유의 기지개에 모든 나무들이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하다.  

산동면 상위마을. 자연이 준비한 '봄의 축복'을 가장 많이 받는 곳이다. 남원에서 19번 국도를 따라 구례로 가다가 산동터널을 넘으면 왼쪽에 지리산 온천이 나타난다. 전국의 산수유가 다 이곳에 모여있는 듯 온천 뒤의 산자락이 모두 산수유 천지이다. 노란 물결을 따라 지리산 만복대로 오르다 보면 해발 480미터의 맨 끝마을이 상위마을이다. 행정상의 주소는 전남 구례군 산동면 위안리 상위마을. 일찍 핀 매화가 지기 시작하는 3월 중순이 되면, 골짜기, 농가 마당 할 것 없이 수백년 묵은 산수유 나무로 덮혀 있는 25가구의 상위마을은 노란 꽃대궐에 파묻힌다. 온천지에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만개한 산수유 꽃이 가히 장관이다. 이때면 마을을 찾는 외지인들도 바로 풍경이 된다.

 

동네 아낙들은 나무타기 선수들이다. 남정네의 도움없이 나무에 잘도 오른다. 산수유 열매가 완전히 익으면 나무에 매달려 그 열매를 따느라 다른 일을 못한다. 한 나무에 여남은 명은 올라가 따는데도 가지가 꺾이지 않을 만큼 산수유는 튼튼하다. 야생 상태로 길러진 나무에 봄에 퇴비만 약간 줄 뿐, 인위적인 행위가 일체 가해지지 않는다. 농약도 살포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열매는 완전 무공해를 자랑한다. 산수유 열매를 키우는 힘은 지리산의 정기와 맑은 산간 햇빛, 그리고 오염과는 거리가 먼 물과 대지의 자양분이다.

상위마을 사람들은 앞니가 성한 사람이 드물다. 10월말부터 산수유 열매와 씨앗을 분리하는 일에 앞니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햇볕에 약간 말려 꾸덕꾸덕해진 열매를 하나씩 입에 물고 깨물어서 씨앗을 발라내야만 한다. 오랜 세월 그 일을 하다 보니 앞니가 견뎌 내지 못해서 마을 노인네들의 앞니는 다 닳았다.

″옛날에는 겁나게 재미있었지라우. 산수유 딸 때가 되면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응께요. 씨빼기를 험시럼 쬐끔씩 목구멍으로 넘어간 국물 땜시 이저까지 사는갑네요″ 올해  여든 일곱살의 김판수 할머니의 말이다. 이제 이빨 고생도 옛말이 되었다. 7년전에 고안된 기계가 앞니를 대신하여 열매를 까주고 있다. 그러나 기계로 한 작업에는 열매 손상이 많아 아직도 이빨로 깐 것을 더 상품으로 쳐주고 있다.

상위마을은 임진왜란때 피난민들이 자리잡은 곳이다. 1백가구가 넘는 큰 마을이었으나 6.25를 겪고 나서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스물다섯 집이 남아있다. 지리산 산간마을이 대개 그러하듯 이 마을도 빨치산 소탕작전을 비켜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95년 7월에 산동면에 문을 연 게르마늄 온천탕으로 외지인들이 몰리고, 건강식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 마을 임산물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 마을의 산수유꽃은 최량의 밀원이 되어 이곳에서 따는 토종 꿀은 전국 최고급품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산수유와 더불어 마을사람에게 자연이 내린 또 다른 축복은 고로쇠 수액이다. 경칩과 곡우때 온동네 사람들이 고로쇠물을 받으러 산으로 새벽같이 출근한다. 이로 인해 마을의 연간 소득이 각 집마다 3-5천만원에 이른다. 주민 소득이 올라가고, 각종 언론의 소개로 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객지에 흩어졌던 사람들이 하나 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

″공기 좋고 물 좋고 무조건 조아부러. 공해 빼낼라고 그러능가, 도회지 양반들이 고로쇠물 무던히도 찾는기라.″ 제1회 산수유 축제때 내다 팔 고로쇠물을 경운기에 실으며 구형근(66) 이장이 웃음을 짓자 부인 김정자(61)씨도 덩달아 활짝 웃는다. 이들 부부의 무공해 웃음 사이로 새로 해박은 앞니가 산수유 꽃빛에 비치어 노랗게 반짝이고 있다.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도로를 탈 경우 전주IC에서 나오는 것이 빠르다. 전주 우회도로를 타고 남원을 넘어 구례로 간다. 남원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길은 국민의 정부 들어서 고속도로처럼 시원스레 길이났다. 남원에서 밤재터널을 넘으면 바로 내리막 길 끝에서 오른쪽으로 지리산 온천 나가는 길이 있다. 이길을 따라 들어가면 된다. 구레에서 30분 마다 마을에 들어서는 버스가 있다. 자세한 안내는 구형근(064-783-1330)를 통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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