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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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실/아빠와 아들의 사진산책

3-2(모든 생명은 귀하다)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3. 15:23

준우야 시험 공부하느라 무척 바쁘지. 그 바쁜 와중에도 아빠와 하는 사진산책이 너에게 활력을 주는 것 같아 무척 기쁘단다. 물론 준우와 함께하는 사진산책이 아빠의 삶속에도 쉼표를 주고 있단다. 아빠와 함께 산책을 하면서 느꼈겠지만 사진과 산책은 참으로 많이 닮은 것 같아. 산책에서 즐거움과 사진의 즐거움이 같은 점이 많거든 

너에게 사진을 가르켜 주면서 아빠의 첫째 원칙은 ‘사진찍기는 즐거운 놀이’라는 것이지. 준우가 어렸을 때 아빠 카메라를 가지고 아빠 흉내를 내며 놀 때의 그 즐거운 마음을 잃지 않게. 아빠가 처음 사진을 배울 때에는 너무 교과서적으로 원칙을 쫒다 보니 정작 사진이 주는 즐거움과 재미를 잃어버린 곤 했지.

노출, 조리개, 셔터스피드, 피사계심도등등 이런 복잡한 사진촬영 형식들은 다 내려놓고 그저 천천히 걸으면서 피부에 와 닿은 바람을 느껴보고 코 끝을 간지르는 향긋한 꽃들의 향기를 음미해보면서 입시가 주는 스트레스로 찌든 모든 감각들은 해방시켜주는 거야. 그리고 어떤 느낌이 오고 늘 보던 자리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카메라를 들고 그곳을 바라보는 거지. 촬영이라는 형식에 집착하지 말고 그저 바라보고 있다 보면 그 대상이 너에게 다가와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지난 일요일 사진산책길에서도 너는 새로운 것을 발견했지. 호수공원 팔각정을 돌아나오는 길에서 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걸음이 빨라졌지.
준우가 쭈그리고 안아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 본 것은 할미꽃이었어.
백발을 휘날리며 꼿꼿하게 서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빠 이상해요. 학교에서 배울때 할미꽃은 허리를 숙이고 있는데…이 할미꽃들은 늙어서 치매에 걸렸나봐”
 이때 이곳을 지나가던 할머니들이 하는 말.
“요즘 할머니들은 놀고 먹어서 허리가 빳빳해…”
너의 말과 산책하던 할머니 말을 들으며 아빠는 모처럼 배꼽 빠지게 웃었단다.
꽃이 지고 씨앗을 맺으면서 할미꽃이 고개를 드는 이유는 뭘까?
자손을 멀리 퍼트리기 위한 방안으로 씨앗을 조금이라도 더 멀리 보내기 위해서라는 아빠의 설명에 너는 맑은 눈을 초롱거리며 열심히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지.
준우야 지금 생각해 보니 할미꽃은 허리가 굽은 할머니를 닮은 게 아니라 머리가 하얗게 세고 나이가 들수록 자식 뒷바라지하면서 오히려 강인해지는 우리네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

 
2. 모든 생명은 다 귀하다

 

산책을 마치고 작은 호수공원을 돌아 집으로 오는 길에서 우리는 가슴 아픈 광경을 목격했지. 고요한 숲속에 요란한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떼까치 한마리가 작은 새를 위협하고 있었어. 작은 새는 필사적으로 도망가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지. 작은 새의 처절한 외침에 너는 작은 새를 구하려 다가가려 했지만 떼까치는 큰 입으로 작은새를 물고 나무위로 올라갔지. 잠시 후 소나무 높은 가지에서는 작은 새의 털들이 눈처럼 날리며 떨어지고 있었어. 너는 떼까치가 못된놈 이라고 흥분했지만 그때 아빠는 오래 전 어느 절 스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단다.

“ 매한테 쫓기던 비둘기가 수행자에게 살려달라고 간청하였다. 수행자는 매더러 왜 약한 생명을 해치려하느냐며 꾸짖었다. 매는 비둘기를 먹지 않은면 내가 죽는다, 비둘기도 생명이지만 나도 생명이라며 자기 생명을 어떻게 할 것 이냐며 수행자에게 되물었다. 수행자는 비둘기 대신 자시 살을 떼어주겠다면 허벅지살을 떼어내 저울에 달았다. 저울이 비둘기 쪽으로 기울어졌다. 수행자는 다른 쪽 허벅지살을 보태 저울에 달았지만 이번에도 비둘기 쪽으로 기울었다. 할 수없이 수행자는 저울에 올라서자 그때서야 저울이 균형을 이뤘다.”
 
나중에 알고보니 부처님의 전생을 다룬 백유경에 나온 이야기인데 당시 생명을 소재로 작업하던 아빠에게 이 이야기는 큰 감동을 주었어. 모든 생명은 다 귀하고 한 줌도 안 되는 작은 새의 생명도 사람의 생명처럼 소중하기가 다를 바 없고 그 작은 생명 안에서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지. 준우는 떼까치가 나쁜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떼까치 역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새끼들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쩔수 없는 선택을 했을거야.       
  
준우야 기억나니 오래 전 충남 서산의 부석사에서 하루밤을 자고 이른 아침에 손바닥을 위해 모이를 놓고 새에게 모이를 주던 일들을…그때 너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어. 그때의 감동을 아빠가 사진과 글로 적 놓은 것이 있는데 다시 한번 그때의 감동을 느껴봐 ^ ^

 


손바닥에 땅콩을 부수어 놓고 하늘을 향해 손을 쭉 뻗으면서도 장난기 가득하던 아이였습니다.
설마 새가 손위에 앉을까 하는 생각이었겠지요.
손바닥에 곤줄박이가 살며시 내려앉자 처음에는 무척 긴장하더군요. 그저 눈으로 보는 것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겠지요.
새 발톱에서 전해지는 낯선 느낌이 따갑고 간지러웠지만 가녀린 무게감과 몸놀림이 그대로 아이의 손바닥을 타고 전해질 테니까요.
아이는 제법 진지하게 바라보며 손바닥 위에 앉은 새와 감정을 주고받는 듯합니다.
아이는 가까이에서 보니까 새가 아주 예쁘다고 하더군요.
곤줄박이는 배고픈 겨울에 먹이를 나누어주는 아이가 고맙겠지요.
그렇게 자연과 사람이 마음을 주고받으며 친구 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봄방학을 맞은 둘째 아이가 충남 서산 부석사에서 가진 아름다운 만남이었습니다.
(200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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