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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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고향산책

1억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16:07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제전마을

 

지구상에 존재한 수많은 생물체 가운데 가장 강력하고 파괴적인 생물은 단연 공룡이다. 티라노사우루스 처럼 육식 공룡은 인류의 조상인 영장류를 비롯한 다른 생물체에게는 잔인하고 난폭한 약탈자로 공포 그 자체였다. 진화의 시간이 흐르고 공룡은 어느 순간 매력적인 동물로 변신했다. 만화영화 '둘리'에서 처럼 사랑받는 귀염둥이 애완동물로 등장하기도 하고 실존했던 신비의 동물로 학자들은 공룡의 자취를 쫓기도 한다. 공룡은 어쨌든 사람들에게 언제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물임이 틀림없다.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공룡의 전성기였던 쥐라기 시대에 착안해 영화 '쥐라기 공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는 그보다 훨씬 방대한 '쥐라기 공원'이 실제로 존재했다. 경남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제전마을 해안. 이곳은 브라질, 캐나다 지역과 더불어 세계 3대 공룡유적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지난 46억년 동안 지구의 역사중 가장 긴 시기를 지배했던 강인한 동물인 공룡이 뛰어 놀았던 덕명리 제전마을을 찾아 떠나는 길은 바로 1억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간여행이다.

제전마을에 들어서면 한눈에 이 마을이 공룡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마을 이곳저곳에 붙어있는 '공룡횟집' '용가든' 같은 상호에서부터 벌써 심상치 읺은 분위기가 풍긴다. 해안가 단단한 바위에 찍혀 있는 거대한 발자국을 보면 수억년전 이곳에 공룡들이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수억년 전의 발자국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던 사람들도 발자국들이 일정한 보폭으로 줄지어 나있는 것을 확인하고 비로소 고개를 끄덕인다. 더욱이 크기와 생김새가 비슷한 발자국끼리 무리를 이루고 있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의아심은 일순간에 감동으로 변한다.

썰물때 제전마을 방파제를 지나 바다쪽 촛대바위 부근으로 가면 '공룡들의 무도장'이라고 이름붙인 넓은 광장이 나온다. 물기에 젖어 검게 번들거리는 널찍한 갯바위에는 마치 커다란 전복 껍질로 눌러놓은 듯한 길이 30cm 가량 되는 둥글고 길다란 발자국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어떤 것은 물갈퀴가 달린 오리발 같은 형상이다. 이런 발자국들은 대부분 10여 개씩 일정한 간격으로 직선을 이루고 있다.

촛대바위를 돌아서 경북 청소년수련원 건물 앞 몽돌해안을 지나면 고성군 제일의 비경인 상족암이 나타난다. 이곳에도 바닷가 곳곳에 공룡의 흔적이 있다. 공룡 발자국도 그렇지만 주변 풍광 역시 경탄을 자아낼 만큼 빼어나다. 변산반도 국립공원 채석강이 유명하지만 그보다 손톱만치도 못 할 것이 없는 뛰어난 경치다. 이 곳에는 묵은 책을 쌓아 놓은 것 같은 검은 바위벼랑이 세 겹 네 겹으로 펼쳐져 있다. 변산반도 채석강에는 없는 해식동굴도 수없이 뚫려 있어 시간의 경이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검게 깔린 해안 암석 바닥은 검은 대리석을 맵시 있게 다듬어 겹겹이 깔아 놓은 듯 하다.

먼 옛날 덕명리 제전마을 앞바다는 거대한 호수였다. 그때 호숫가 주변에 살던 공룡들은 진흙 바닥에 수많은 발자국을 남겼다. 그 뒤 공룡들이 지구상에서 갑자기 멸종하고 그들이 남긴 발자국 역시 다른 퇴적물에 뒤덮여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다시 수억년 동안 지구는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게 되었고 덕명리 해안에서 뛰놀던 공룡 발자국도 모습을 드러냈다.

덕명리 제전마을 해안이 주목을 받은 것은 1982년이다. 경북대 양승영 교수가 이곳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학계에 정식으로 보고를 했다.  ″우리가 뭐를 알았겄소? 전에 어른들이 구들장 놓는다꼬 바닷가 반반한 돌을 떼낸 자리에 구덩이가 있는데, 그냥 그런갑다 했지 공룡발자국이라 상상이나 했것는 가요″ 선착장에서 그물 손질을 하고 있던 강창수(47)씨의 말이다. 강씨처럼 이곳 토박이들은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이 공룡들이 살았던 지역이라고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제전마을은 서른가구가 사는 아담한 어촌마을이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사람이 살았는지 모르지만 닥나무가 무성하게 자라서 '딱골'이라 불리기도 하고 닥나무 '저(저)'자를 써서 저전(저전)마을이라 불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제전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제전마을이 공룡 집단서식지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덕명리 해안은 밀려드는 관광객과 학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외지인들이 몰려들어 탐방객을 상대로 장사를 하기도 하고 경남도청에서는 7년전에 공룡발자국이 널려있는 바닷가 바로 옆에 공룡처럼 거대하고 기괴한 모습의 청소년 수련관을 건립했다. 수억년에 걸쳐 생성된 공룡 발자국 옆에 인간들이 급조해 만들어 놓은 이상한 부조화였다. 

자연의 바다를 생계로 살아가는 대다수 주민들은 마을이 번잡해 지는 것에 대해 내색을 하지는 않지만 불만감이 팽배하다. 주민들은 고성군 주최로 매년 8월에 열리는 '공룡나라 축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뭘라코 와서 먹고 싸고, 쓰레기만 억수로 쌓이지, 장사하는 사람들한테나 쪼게 도움이 있을까 몰라도 주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김정해(51)씨의 말에 김수갑(40)씨는 ″아직까지 우리 한국 사람들은 기본이 안됐는 기라요, 와서 좋은 구경했으면 됐지, 시끄럽게 떠들다가 쓰레기랑 똥만 남기고 가는 기라요″라면서 거든다. 마을과 해안이 더럽혀 지는 것을 보다못한 주민들은 작년부터 하루에 천원씩 청소비 명목으로 주차비를 받고 있다.

제전마을의 이한갑 이장은 공룡 발자국에 큰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국제적인 보물인 이 지역을 우리 후손들도 볼 수 있도록 작은 방파제라도 쌓아 파도에 의한 침식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곳 공룡발자국은 세계적인 유산인기라. 쪼개 힘들어도 마을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고 관리해야 되지 않겠나″ 바닷가를 돌면서 주민들에게 협조를 당부하는 이씨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이장과 인사를 나누고 바닷가로 나오니 경남 사천시에서 견학온 초등학생들의 재잘거림이 공룡 무도장 터에 가득하다. ″와 선생님요 보이소. 이건 이구아나 발자국이라예.″ ″선생님요 공룡이 정맬로 있기는 있었는카 보네요″. <2002.8>

<찾아가는 길>
지난 82년 공룡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이듬해부터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고성군 하이면 덕명리 해안은 한려해상국립공원 경내인 경남 남해와 충무 해안을 양옆에 끼고 있어 어디나 1시간이면 족한 거리다. 덕명리 제전마을 까지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마산, 고성군청 소재지를 지나 해안도로로 가는 방법과 진주, 사천, 삼천포로 들어가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 상족암이라는 이정표를 향해 가면 된다. 삼천포에서는 제전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매시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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