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화성에 흙집짓기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흙집이야기

화성에 흙집짓기

빛으로 그린 세상 2016. 6. 28. 16:52

 "새나 벌도 자기 집을 짓는데 왜 사람들은 스스로 집을 못 지을까?"
다소 엉뚱한 생각이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뿐이었다. 오십 줄에 들어서며 권태기가 찾아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요리, 그림등 많은 것을 찾아 헤맸지만 그 갈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올해가 문화일보 근속 20년. 5일간의 특별휴가가 주어졌다. 오래전부터 히말라야 트래킹을 꿈꿔왔으나 엄청난 지진이 발길을 붙잡았다. 네팔 행을 포기한 후 자료를 찾다가 흙집학교를 알게 됐다. 강한 끌림이 있었다. 어릴 적 흙장난을 좋아했다. 흙집에서 태어나 흙과 함께 놀았다. 흙에는 유년의 추억이 그대로 녹아있다.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스스로 집짓기의 희망을 안고 지난 5월 원주에 있는 흙집학교에 덜컹 등록했다. 
 "인간도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있는 DNA가 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건축업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서 스스로 집을 짓는 즐거움과 능력을 잃어버렸죠."
흙집학교 교장의 강의는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다양한 직업을 가지셨던 조상님들의 DNA가 우리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그 DNA의 잠재력을 0.1%만을 사용한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화성의 고향집도 증조부께서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나에게도 분명 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수료증을 받아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 늙으신 어머니를 위해 정직한 흙집을 만들어 보리라 결심하며 굵어진 팔뚝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흙집학교를 졸업한 후 정확히 한 달 후 고향집 헛간을 허물고 흙집을 위한 땅파기가 시작되었다. 익숙지 않은 삽과 고굉이질, 홀로 하는 작업은 진전이 없었다. 백년이 넘게 풍상을 견딘 헛간 터는 고갱이로 힘껏 내리쳐다 꿈적도 않았다. 시작부터 난감했다. 설상가상 엘보우가 돋아 오른쪽 팔꿈치가 끊어질 듯 아팠다. 약해지지 않으려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출사표를 던진 상태였다. 땅이 단단하니 기초를 하지말까? 그냥 접어버릴까? 여러 가지 유혹이 스멀스멀 연기를 피웠다. 마당에 누워 거대한 참나무를 바라보았다. 수백 년의 풍상을 안고 고향을 지킨 나무다.  
 ‘기초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떠받친다. 나무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가지와 잎을 먹여 살린다.’
문제가 있으면 길이 있는 법, 이러저런 생각 중에 흙집학교 동기가 찾아왔다. 힘이 났다. 함께 하니 꿈적도 않던 땅이 움직였다. 겨울철 대비해서 30cm이상 파 헛간 주춧돌을 박고 약3톤 분량의 폐자갈을 시멘트몰탈과 섞어 기초 작업을 하였다. 기초 작업을 마치고 이 위에 들어설 세상에 하나뿐인 흙집을 생각했다. 파김치가 된 몸에서 엔도르핀이 팍팍 돌았다.

 

 

 

땅기초가 굳으면서 본격적인 흙집 짓기에 돌입했다. 일주일간의 휴가와 앞뒤 휴일을 붙이니 열흘간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고향집 사랑방에 베이스캠프를 차려졌고 흙집학교 동기들이 번갈아 흙집 짓기에 합류했다. 하지만 초보집짓기의 미숙함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제일먼저 도착한 자재가 지붕에 쓰일 참나무 너와지붕. 5톤 분량의 너와가 앞마당 한가득 내려졌다. 맨 마지막에 들어올 자재가 제일먼저 들어와 상석을 차지해버린 것이다. 공사기간 내내 발에 걸리적거렸다. 자재구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흙집의 핵심은 구들. 이 구들을 위해서는 줄기초가 필수다. 줄기초는 자연석을 이용한 줄기초가 보기에도 좋고 이상적이다. 하지만 돌을 구할 수 없었다. 평소 전국 어디가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돌을 막상 필요로 하니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할 수없이 외벽은 적벽돌로 내벽은 시멘트 벽돌로 줄기초를 하였다. 땅기초 위에 수평을 위한 기준대를 세우고 벽돌을 쌓아갔다. 한 장 한 장 벽돌이 쌓여지니 집을 짓는 실감이 들었다.     

 

 

 

 

 

 

 

줄기초를 마치고 이틀간 흙집학교 동기들과 구들을 놓았다. 구들은 수천 년 이어져온 조상의 지혜가 담긴 소중한 유산이다. 아궁이, 부넘기, 고래, 개자리, 굴뚝으로 이어지는 구들은 한마디로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구들바닥의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비닐을 깔고 개자리를 만들었다. 개자리는 바닥 쪽으로 찬기운을 내리게 함으로 아궁이로부터 오는 불길을 끌어당기는 역할을 한다. 저기압일 때나 굴뚝으로 역류해 들어오는 역풍을 차단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아궁이 쪽으로 연기나 불길이 역류하는 것을 방지한다. 개자리와 함실아궁이를 만든 다음에 황토와 숯을 깔고 구들바닥에 이웃집형이 1년간 마신 빈소주병을 촘촘히 깔았다. 마을에 구들전문가로 자처하는 이웃집 아저씨도 빈병을 까는 것을 처음 보았다며 신기해 하셨다. 구들바닥에 빈 병을 깔면 온기를 축열하여 구방을 오랫동안 따듯하게 할 수 있다.
다음은 고래뚝 작업. 고래는 불길과 연기의 통로다. 고래뚝은 불길이 닿아 부식되기에  ALC블록으로 쌓았다. 고래뚝 작업을 마친 후 구들장을 놓고 새침까지 이틀간의 긴 공정이 끝나고 마침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흙집의 핵심이 구들인 만큼 모두 조마조마한 눈으로 연기가 새는 곳은 없는지 곳곳을 살피며 임시 굴뚝을 쳐다보았다. 연기가 힘차게 품어져 나오며 이내 환호성이 터졌다. 서로 얼싸안으며 우리 손으로 조상들의 맥을 이었다는 기쁨을 나눴다. 잊지 못할 감동의 밤이었다.

 

 

구들이 완성되고 본격적인 흙벾쌓기에 돌입했다. 문제는 마당에 가득한 너와지붕. 멀리서 있는 흙벽돌을 일일이 날라야했다. 흙벽돌 한 장의 무게는 약11kg. 8백여 장이 넘는 흙벽돌을 일일이 옮기는 일이 큰일이었다. 한단 한단 흙벽이 올라가면서 흙집짓기의 성과가 눈으로 확인되니 뿌듯한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원형흙집 벽쌓기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조적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수평을 잡기위해 기준대를 세우고 외벽과 내벽 사이를 두겹으로 벽체를 쌓아올렸다. 벽체 두께는 35cm. 12cm의 벽과 벽사이는 와이어메시로 잡아주고 그 사이를 참숯으로 채웠다. 벽체는 총 12단이 올라가고 사이사이에 문틀, 환기창, 그리고 통창을 내주었다. 문제는 예고 없이 쏟아지는 소낙비. 숨쉬는 흙집을 짓다보니 지붕을 올리고 방수처리를 하기 전까지 물은 상극이다. 하늘이 거무스레해지면 작업을 중단한 채 흙벽을 통째로 비닐포장을 해야했다. 그 작업을 몇 차례 하다보면 여름해가 짧기만 했다. 큰 비가 예보된 상태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업한 덕분에 이틀 만에 12단의 벽체가 완성되었다. 3평이라고 간단히 생각했는데 완성된 흙벽체를 보니 거대한 발전소를 지은 듯 했다.

 

 

 

 

 

 

완성된 흙벽체위에 서까래를 세우는 작업은 또다시 나를 시험대에 들게 했다. 함께 도움을 준 흙집학교 동기들도 하나둘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기둥없이 서까래를 올리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휴가는 끝나가고 변덕스런 날씨 또한 발목을 잡았다. 이대로 관둔다면 죽도 밥도 안 될 판이었다. 텅 빈 사랑마루에 앉아 내리는 비를 바라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모든 사람들이 단비를 그리워했는데 혼자 비를 미워하고, 사전준비도 없이 세상물정 모르고 덤벼들고, 어머니께 황토방을 만들어 드린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고도 자신의 사정만 생각하며 무리한 일정을 잡고…….
사랑마루에서 술을 푸고 있는데 한통의 반가운 전화가 왔다. 흙집학교 본부장과 선배님이 화성으로 지원 나온다는 연락이었다. 대목장인 본부장 일행이 도착과 더불어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16개의 서까래를 다듬고 이를 하나로 고정시킬 찰주도 세워졌다. ‘찰주’는 무늬도 다르고 긁기도 제각작인 서까래들을 하나로 모으는 천장의 중심이다. 서까래 하나라도 빠져나가면 천장은 주저앉는다. 찰주를 중심으로 16개의 서까래를 작업을 마친 후 루바(실내천장)작업, 덧서까래 작업 그리고 그 속에 다시 부직포를 깔고 숯을 넣고 OSB합판을 덮고 그 위해 방수시트를 까는 작업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비로소 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정직한 흙집을 직접 지어보자” 생각의 힘은 컸다. 관련 책을 보고 인터넷을 검색하며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며서 생각의 힘은 자꾸 커져갔다. 그 생각의 에너지는 내손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발전하여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포클레인으로 헛간을 밀어버리고 식구들과 동료들에게 출사표를 공개적으로 던졌다. 하지만 야심만만한 생각은 실전에 돌입하면서 높은 현실 벽앞에서 몇 번을 휘청거렸다. 무리한 공기를 맞추느라 계속된 야간작업과 매일 이어지는 뒤풀이로 몸은 지칠대로 지쳤고 시도 때도 없이 날아드는 자재비 청구서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집 한번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것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알고 했으면 못했을 거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가지는 “현실을 창조하는 출발점은 생각”이라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집짓기는 매순간 선택과 집중의 연속이었다. 조그만 못 하나부터 서까래등 모든 자재를 선택하고 현장상황에 맞게 응용해야했다. 머릿속 생각이 손과 발을 움직여 구체화 되면서 자신감도 커져갔다. 두 손과 두 발은 물론 온몸이 구석구석 깨어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내 몸과 마음, 에너지가 고스란히 흙집에 담겨졌다. 완성된 흙집을 바라보면 마치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집 한 채를 다짓고 나니 스스로 집짓기는 몸과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되는 수행과정이라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흙집을 지은 자신감에 여세를 몰아 식탁을 짜고 화단을 만들고 매주 화성 고향집으로 달려가 뚝딱 무언가를 만들고 온다. 주말이 가까워 오면 몸이 근질거린다. 그때마다 농담 삼아 중얼거린다. “화성에 집을 지었으니 다음엔 목성에 한번 지어볼까!”     

그동안 무식한 집짓기에 동참해준 흙집학교 동기들과 마을분들 그리고 흙집학교 본부장님과 선배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끝까지 믿고 격려해준 가족과 늦은 밤까지 집밥을 해주신 어머니께 이 흙집을 바친다.

 

 

'삶의 원형을 찾아서 > 흙집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채 복원 첫째날(2021.3.2)  (0) 2021.03.08
119출동...말벌집 제거  (0) 2016.08.11
초여름밤 아우들과 함께...0617  (0) 2016.06.23
처가방문  (0) 2016.04.26
봄의향연   (0) 2016.04.2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