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호두가 영글어가는 산골 마을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고향산책

호두가 영글어가는 산골 마을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16:13

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2리

 

옛날에 호두 농사를 짓는 욕심 많은 농부가 신께 빌었다.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호두를 많이 생산할 수 없습니다. 1년 동안 궂은 날 없이 좋은 날만 내려주십시오″

하늘은 간절한 농부의 소원을 들어주어 청명한 날만 계속되었고, 마침내 그 해에는  대풍년이 들었다. 드디어 호두를 수확하는 날,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호두 속이 모두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서야 농부는 깨달았다. 좋은 호두를 생산하려면 모진 비바람도 견뎌야하고 뜨거운 가뭄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을..
 
온갖 어려움을 견디면서 속이 꽉찬 호두를 영글어내는 호두나무처럼, 최근까지도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했던 산골에서 거친 땅을 일구며 호두를 생산해내는 마을 사람들이 있다. 충북 영동군 상촌면 궁촌리다. 껍질이 얇고 속이 꽉찬 이 마을의 호두는 궁촌리의 자랑이다. 황학산, 삼도봉, 민주지산 등의 고봉으로 둘러싸인 깊고 푸른 산줄기에 자리잡은 이 마을 일대는 낮과 밤의 기온차가 크고 날씨 변화가 심해서 농산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척박한 땅이다. 궁촌리에서 황학산 줄기를 따라 오르다보면 사방으로 펼쳐진 회백색 호두나무 군락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충북 영동에서 최고 오지로 꼽는 상촌면 궁촌2리. '점마' '새막골' '지통마'라는 정겨운 이름이 붙은 세 개의 자연부락이 있는 곳이다. 작년에 외할머니와 손자의 따뜻한 사랑을 그린 영화 '집으로'의 촬영지로 유명해진 지통마는 상촌면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호두마을이다.

지통마를 찾아가는 일은 간단치 않다. 궁촌2리 첫 마을인 점마에서 지통마까지는 약 1 KM 정도 험하고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야 한다. 고갯길을 넘어서자 호두나무 사이사이로 오르막 비탈길을 따라 옹기종기 들어선 흙벽집이 다정히 이방인을 반긴다. 자세히 보면 흙집의 형태도 여러가지이다. 돌과 흙을 섞어 쌓은 흙돌집,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쌓아올린 흙벽돌집, 나무줄기 사이로 흙을 채운 흙나무집 등... 길 양편에는 적당히 구부러지고 휘어진 계단식 밭고랑이 아름다운 굴곡으로 흙집과 어우러져 산골마을의 전형적인 풍경을 이룬다. 마을 사람들의 부드러운 심성이 엿보이는 듯하다. 영화 '집으로'에서 김을분 할머니가 사시는 집도 이곳에 있다. 하지만 작년에 거세게 몰아친 태풍 '루사'로 완전히 무너지고 주위풍경마저 변해버려 아쉬움을 주고 있다.

지통마에는 산비탈 곳곳에 서있는 수십년된 호두나무에 아이 주먹만한 호두가 탐스럽게 달려있다. 이곳을 호두나무의 고장으로 만든 사람이 김재문(73)이장이다. 김이장은 지난 72년에 이곳에서 자갈 땅을 일구며 1천여 그루의 호두나무를 심었다.

″집사람이 자갈밭을 일구느라 죽을 고생을 했지유.″

5일장에 가려고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는 부인 박종희(69)씨를 보면서 이장이 웃으며 말한다.

″우리 애들은 모두 이 호두로 키웠구만유. 산골에 살아두 애들이 호두처럼 속이 꽉 차게  자라주어서 고맙지유″

박씨 아주머니가 호두 몇 알을 깨뜨려 주며 은근히 아이들 자랑이다.

지금은 다섯가구 노인들밖에 살지 않지만 척박한 땅을 일구어 평생을 호두농사로 살아온 사람들. 올해는 비가 많이 와서 걱정이지만,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하늘이 주는 만큼 거두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 속에서 진한 자연의 향기가 느껴진다.<2003.9>

<찾아가는 길>
궁촌리 지통마를 가는 길은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추억 속으로 달려가는 느낌이 든다. 영화속의 상우처럼 시골버스를 타야 제격이지만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승용차로도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황간 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상촌면으로 들어서면 된다. 면사무소를 지나 579번 지방도로를 타고 궁촌리 상수원댐을 지나 황학산쪽으로 계속 오르다 보면 호도나무 마을을 만날 수 있다. 김재문 이장(Tel:043-743-3858)을 통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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