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한 포기의 집 본문
한 포기의 집/나희덕
장마가 들이닥치기 전
배추를 거두려고 서두르는 손
잎을 들출 때마다
한 포기씩 뽑힐 때마다
수룩수룩 딸려나오는 목숨들,
잎부터 뿌리까지 한 틈바구니도 남기지 않고
푸른 지붕 아래 오글오글 정들어 살던
온갖 날것과 기어가는 것들이여.
한 목숨에 붙은 목숨들
이리도 많다니!
한 포기의 배추가
실은 한 채의 집이었다는 걸 안다 해도
장마 오기 전 서두르는 손들,
더 멀리 날아가는 날개들,
흙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드는 작은 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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