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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고향산책

한편의 영화같은 마을

진목토우 2017.07.18 16:15

전남 장성군 북일면 문암리 금곡마을

 

전라남도 장성은 건강한 숲의 고장이다. 산림이 전체면적의 70%에 달하며 산 속에는 튼실한 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다른 지역에서 흔한 나무병도 이 지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한눈에 봐도 건강한 나무들의 푸르름이 온통 사위에 가득하다.

장성의 숲 중에서도 으뜸은 서북쪽에 위치한 축령산 숲이다.  이 축령산 숲은 지난해 유한킴벌리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숲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춘원 임종국 선생이 자비를 들여 지난 56년부터 조성한 이곳에는 아름이 씨름선수 허리통만한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빽빽하다. 평균 나무 높이도 18m에 달해 대낮에도 해가 안보일 정도다.

축령산 숲속에는 6km의 황톳길이 나 있다. 이 조용한 숲속 황톳길을 걷노보면 복잡한 세상사가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울창한 숲을 뚫고 들어온 햇살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스포트라이트를 비치듯 앞장서고 그 빛에 홀려 홀연히 걷노라면 마치 자신이 영화 속의 한 장면에 서 있는 듯한 환상적인 분위기로 빠져들게 된다.  이 황톳길을 걸어걸어 도착하는 축령산 들머리의 한 마을이 영화마을인 것이 우연이 아닐 듯 싶다. 타임머신을 타고 내가 진짜 영화 속 장면으로 들어온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워 두 눈을 자꾸만 씻고 보게 되는, 축령산의 넉넉한 품에 폭 감싸여 있는 문암리 금곡마을.

이 마을의 시계는 온통 60-70년대에 맞춰져 있다.  마을 어귀의 울창한 당산나무로 시작해 고샅길 너머 싸리나무 담장에 초가집, 다랑이논에서 낫으로 벼를 베는 농부들, 동네 어귀에서 마주친 주름진 할머니의 표정까지 모두 박물관에서 만날 법한 순토종 들이다. 마치 타이머신을 타고 어릴 적 고향마을에 들어선 듯 아늑한 기분에 휩싸인다.

마을 입구에는 마을주민들의 휴식처가 되는 수령 2백년이 넘은 당산나무가 먼저 손님을 맞는다. 당산나무는 마을의 어른노릇을 톡톡이 해내고 있다. 마을에 좋은 일이 있거나 나쁜 일이 있으면 주민들이 주위에 모여들어 의견도 교환하고 제사도 지낸다. 평상시에는 그 너른 그늘에 마을사람들을 품어준다.  당산나무를 거쳐 마을 안으로 들어가는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지막한 돌담에 둘러싸여 있는 아담한 초가집 한 채가 보인다.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서 열일곱 늦깍이 초등학생으로 등장했던 홍연(전도연)이 살았던 곳이다. 영화 '태백산맥에서도 등장했던 이 집은 주민이 실제 거주하고 있는 곳을 촬영세트로 빌려 쓴 것이다.

윗집도 마찬가지다. 초가와 초가를 잇는 골목길과 낮은 돌담, 집안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재래식 화장실과 우물 등, 금곡마을 전체는 영화 세트와 다름없다. 거장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과 '서편제'를 비롯, 그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였고 드라마 '왕초'등도 이 마을에서 찍었다. 마을 주민들은 자연히 영화제작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때로는 엑스트라로 실제 영화장면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다시 다시 할 때가 많습디다요. 정말 영화 찍기가 농사보다 겁나게 힘들당께요.″

마을 진입로에서 부인과 나락을 말리던 정성백(59)씨는 영화에 자신이 직접 출현한 경험을 이렇게 들려준다.

″태백산맥 찍을 때 6.25 배경이라고 폐타이어를 태우는데 굉장했지라, 마을이 몽땅 불타는 줄 알았당께요.″

하루 네 차레 마을 당산나무까지 들어오는 버스가 읍내로 나가는 사람들을 싣고 떠난 후 마을은 더욱 한적해졌다. 논두렁에 메어논 염소는 단추같이 까아만 눈을 껌벅이고 팔자 좋은 개들은 양지바른 곳에서 실눈을 한 채 졸고 있다. 간혹 꼬부랑 할머니가 고샅길을 오갈 뿐, 마을은 고즈넉한 정적에 휩싸인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몽돌을 쌓아 올린 돌담 위로 시원한 대죽이 운치를 더해주는 집이 보인다. 참으로 아름답다. 개량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김재덕(91) 할머니가 마침 문을 열고 나오신다. 집안을 기웃거리는 기자를 발견한 할머니의 질문이 생뚱맞다.

″아버지 엄니 계신가?″

할머니는 귀가 어두우신가보다. 묻지도 않은 질문에 ″겁나게 먹었소, 한 백살 먹어 뵈여″라며 자신의 나이를 말씀하신다. 할머니는 작년에 서울 둘째 아들집에 있었지만 갑갑해서 다시 이곳에 내려왔단다.

금곡마을은 한지를 생산했던 곳이다. 기록에는 1698년 청주 한씨들이 처음 들어와 터를 잡았고, 비단처럼 질 좋은 한지를 생산해 금곡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한때는 60가구가 살았지만 지금은 23가구 1백여명이 농사를 짓고 있다.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우리나라 전통적인 시골마을인 금곡마을에는 또 하나의 볼 거리가 있다. 마을 맞은편 들녘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고인돌이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 늠름하게 서있는 고인돌은 이 마을이 선사시대부터 우리 조상들이 활동 근거지였음을 암시한다.

고인돌 너머 윗 논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벼를 베고 있다. 산등성이에 만들어진 계단식 논이라 작물을 모두 사람의 손으로 거두어 들여야 한다. 함께 일하고 있는 마을사람들 중에 한 아주머니의 손놀림이 유난히 돋보인다. 낫질대회가 있다면 단연 이 아주머니가 우승자가 될 것이다.  

″나는 이 마을에 시집와서 평상 일만 하고 살아 부렸네. 지금은 살기도 좋은 세상이건만 내 팔자는 일하라는 팔자잉가벼. 인자 이놈의 일에 파묻혀 죽겄소. 긍께 지금 나가 낫질은 선수가 되었제.″

한참만에 아주머니가 낫질을 하다 허리를 편다. 이름이 한일(61)이라는 이 아주머니는 활짝 웃으며 감칠맛 나는 사투리를 써가며 말한다.

″월드컵 때는 내가 유명해져부러써~  '한-일' '한-일' 하면서 촌구석에 있는 내 이름이 겁나게 불려졌구먼.″

아주머니의 넉살에 함께 일하던 주민들이 허리를 한껏 펴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쏴아- 바람이 분다. 들녘이 황금빛으로 물결친다.  마을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바람에 실려 아늑한 고향마을 황금들녘에 넉넉함이 함께 번져나간다.  <2002.10>

 

<찾아가는 길>
때로는 기차길이 여행의 맛을 더해준다. 서울역에서 무궁화나 새마을열차를 타면 장성까지 4시간 정도 소요되고 장성읍에서는 금곡마을까지 버스가 하루 4번 다닌다. 승용차는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으로 나와 장성댐 아래까지 내려온 다음 호암사 방면 군도를 탄다. 898도로를 갈아탄 후 영화마을 팻말이 나올 때까지 간다. 여기서 약2.3km 정도 올라가면 금곡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좁은 마을길을 올라가면 왼쪽이 축령산 방향이다. 축령산 산길로도 차가 다닐 수 있지만 비포장 산길이라 승용차는 조금 버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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