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조개 캐고, 추억 담고 본문

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조개 캐고, 추억 담고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09:20

- 경기 화성 백미리 갯벌체험

 

# 갯벌마차를 타고
이른 아침, 물이 빠진 바다에는 갯벌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희뿌연 하늘과 맞닿은 회색빛 갯벌이 길게 지평선을 이룹니다. 하늘 위에는 갈매기들이 날아가고 사방에는 싱싱한 갯내음이 자욱합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달려왔을까요. 전국적으로 이름난 체험마을인데도 마을은 의외로 소박합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 옆에는 싱그러운 벼가 자라고 마을 담벼락마다 그려진 바다 그림이 정겹습니다. 그리고 낮은 언덕을 돌아가자 숨어 있던 바다가 단번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푸릇푸릇한 논이 있고, 산과 들이 있고, 너른 갯벌을 품은 바다가 있는 백미리 마을입니다.

마을 체험장 입구에는 아침부터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로 활기가 넘칩니다. 트랙터를 개조한 갯벌마차가 사람들을 태우고 드디어 출발합니다. 대개는 아이들이 있는 가족입니다. 엄마, 아빠와 아이들 모두 마을에서 빌려주는 장화와 호미, 그리고 조개를 담아올 양파 망까지 챙겼습니다. 갯벌마차를 타고 갯벌을 한참동안 들어갑니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통에 엉덩이를 찧기 일쑤이지만 불어오는 갯바람도 상쾌하고 뾰족하게 솟은 감투섬과 끝도 없이 펼쳐지는 갯벌을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갯벌 사이로 난 갯고랑에 물이 흐르고 갈매기들이 고양이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갑니다. 저 멀리 쭈그리고 앉아 조개를 캐는 울긋불긋한 사람들도 드넓은 갯벌의 풍경을 이룹니다.

# 바지락아, 어디 있니?
“자, 이것 보세요. 이렇게 숨구멍이 있는 데를 호미로 파면 조개가 나와요.” 바지락 체험장에 도착하자, 아주머니 한 분이 사람들에게 조개 캐는 요령을 설명하며 시범을 보입니다. 어촌계원 정경자씨입니다. 퐁퐁 물이 나오는 팥알만 한 구멍을 파자 금방 바지락이 나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자리를 잡고 갯벌 위에 쭈그리고 앉아 조개를 캡니다. 어디를 파야 될 지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러다가 바지락 하나라도 나오면 환호성이 터집니다. 물웅덩이를 옮겨가며 살아있는 조개를 캐서 양파 망에 담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5살 성우, 7살 신우는 고사리 손으로 잡던 호미를 아예 집어던지고 맨손으로 진흙을 파헤치며 물웅덩이를 휘젓습니다. 오늘만큼은 옷을 더럽혀도 괜찮고 마음껏 흙놀이를 해도 되는 신나는 하루입니다.

갯벌 위에 숭숭 드러난 구멍 속으로 게들이 들락날락하고 소라껍질을 뒤집어 쓴 소라게가 분주히 돌아다닙니다. 조금 큰 아이들은 본격적으로 갯벌탐사에 나섰습니다. 숨구멍을 파들어가 갯지렁이를 꺼내고 게를 잡기도 합니다. 또 물웅덩이를 뛰어 오르는 손바닥만 한 망둥어를 잡아서 유심히 관찰합니다.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들에게 갯벌은 무궁무진한 생태 체험의 보고입니다. 아무래도 제일 분주한 건 엄마들입니다. 조개를 하나라도 더 캘 욕심에 고개 들을 틈이 없습니다. 이렇게 큼지막한 바지락이 시장에서 얼마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어느새 양파 망이 그득해지고 집에 가지고 갈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집니다. 그런 가족을 바라보는 아빠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집니다.

# 일 년 내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갯벌마차가 사람들을 한가득 내려놓고 갑니다. 사람들이 많아도 갯벌이 워낙 넓기 때문에 얼마든지 바지락을 캘 수 있습니다. 새로 온 사람들로 갯벌은 다시 왁자해지고 정경자 아주머니가 조개 캐는 요령을 가르쳐주느라 바빠집니다. “여기까지 찾아와준 분들인데 그냥 빈손으로 가면 안 되잖아요.” 아주머니는 다니면서 조개를 못 캔 사람들 대신 캐 주기도 합니다. 아주머니의 호미가 닿을 때마다 싱싱하고 큼지막한 바지락이 딸려 나옵니다. 바다에는 어민용 갯벌과 체험장 갯벌이 따로 있습니다. 체험장 갯벌에 조개가 없을 때면 어민용 갯벌에서 캐어와 쏟아 붓기도 하고 갯벌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도 주민들 몫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망둥어 낚시가 제일 재미있지요.” 체험장에서 만난 어촌계장 김호연씨입니다. 백미리 갯벌에 많이 사는 망둥어는 대나무 낚싯대와 지렁이만 있으면 초보자도 한 두시간만에 백 여 마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합니다. 망둥어가 어느 정도 커지는 7월 중순부터 망둥어낚시 체험을 할 수 있는데 물고기를 낚는 손맛과 망둥어 매운탕 맛에 이끌려 여름이면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룹니다. 아침에는 농사짓고 물때에는 바지락, 낚지 잡던 작은 갯마을이 체험마을이 된 것은 인근에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부터입니다. 수확이 줄면서 위기감을 느끼자 그 대안으로 어촌체험마을을 시작했는데 성과는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전국에서 이름난 체험마을이 되었고 깨끗한 바다와 드넓은 갯벌이 있는 이곳에 일 년 내내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 갯벌은 다시 바다에 잠기고
지평선 끝에서부터 서서히 물이 들어오자 갯벌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돕니다. 늦게 들어온 사람들은 서둘러 조개를 캐느라 분주하고, 일찍 온 사람들은 그들대로 갯벌을 배경으로 사진 찍으랴 조개를 웅덩이 물에 씻으랴 바쁘긴 마찬가지지요. 아이들은 진흙을 잔뜩 묻힌 채 갯벌을 뛰어다니며 마냥 희희낙락입니다. 그들을 뒤로 하고 갯벌을 걸어 나옵니다. 갯고랑을 따라 물살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곳에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는 건 아닙니다. 망망한 지평선처럼 펼쳐지는 갯벌 한가운데 사람들을 데려다 놓고 호미나 낚싯대만 쥐어주면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무튀튀하고 볼품없지만, 갯벌에서 보들보들 미끌미끌한 원초적인 감촉을 느끼고 꿈틀대는 무수한 생명을 만나고, 그러는 과정에 진흙투성이 세상 걱정 따위는 잊어버리기 때문일까요. 천혜의 갯벌에 마을 주민들의 세심한 배려까지 더해지면서, 사람들에게 갯벌은 더 이상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직접 들어가서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친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모두 태운 갯벌마차가 의기양양하게 나옵니다. 진흙을 잔뜩 묻힌 채 저마다 묵직한 조개꾸러미를 들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싱싱합니다. 그들에게서 비릿한 갯내음과 소금 냄새가 납니다. 바닷물은 스멀스멀 몰려오고 사람들이 추억을 캐던 자리에는 어느덧 푸른 바다가 일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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