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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무는 서해에서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6. 13:58

저무는 서해에서/정끝별


서쪽으로 난 세상 비탈에
허물어지는 해의 살빛으로 세운 계단
백만 갈래의 길을 품은 채
백만 골의 이랑을 물들이고

어두워지는 뭍의 풍경을 등에 지고 걷다보면
일렁이는 불길 층층이 젖은 길들이 밟히고
화근의 해가 지면 바다의 주름을 잡아당기자
뭍의 기다림들은 아코디언 소리를 내며 퍼진다

연하디연한 기억 안쪽이 아프게 접힌다
미끈, 발밑이 습곡처럼 주저앉는다
또 내일이면 바다의 계단이 하나 늘어나고
검게 탄 뭍의 길이 하나 떠오를 게다

찌걱이며 빠져나가는 길의 무덤에서
쓸쓸한 서해에서 저 붉은 소멸의 사원에서
소년들은 타오르는 시간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흥건하게 비린 길들을 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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