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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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서/Nature & Mind

자연이 들려주는 겨울 이야기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7. 18. 09:56

- 경기 양평 수미마을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요 며칠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그치더니 기온이 뚝 떨어지고 찬바람이 매섭습니다. 거리에 나무들도 때늦은 단풍을 남김없이 떠나보내며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데……. 성큼 찾아온 추위에 마음만 분주해집니다. 이른 아침, 양평으로 길을 나섰습니다. 가로수 빈 나뭇가지 사이로 쨍한 하늘이 비치고 황량한 겨울 들판이 펼쳐집니다. 조금은 쓸쓸한 풍경이지만 마을은 막바지 가을걷이와 겨울맞이로 분주합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노부부가 마른 콩 줄기를 늘어놓고 콩 타작을 하고 밭에서는 배추를 뽑느라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겨울준비를 위한 김장 체험이 한창인 양평의 수미마을입니다. 

#추억까지 버무린 김장 김치
마을 체험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가족들과 함께 배추밭으로 향합니다. 김장은 배추와 무를 뽑는 것부터 시작하지요. 주민들이 공동으로 가꾼 밭에는 속이 꽉 차고 튼실한 배추들이 싱싱합니다. 아이들은 고사리 손으로 끙끙거리며 제 몸집만한 배추를 뽑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잘 뽑히지 않는 배추를 엄마 아빠와 함께 뽑다가 그만 엉덩방아를 찧기도 합니다. 그러느라 추위는 저만큼 물러갑니다. 배추와 무를 다 뽑고 나면 체험관으로 돌아와서 본격적인 김장준비를 시작합니다. 앞마당에 놓여있는 테이블에 가족단위로 자리를 잡고 각자 가져온 김치통도 쌓아놓습니다. 온 가족이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갑까지 끼면 준비 완료입니다.

“아빠, 내가 해볼게!” 열 살 가은이가 아빠에게 채칼을 건네받아 무채를 썹니다. 작은 손으로 커다란 무를 겨우 잡고 무채를 써느라 낑낑대지만 생애 첫 김장에 도전하는 가은이의 표정은 사뭇 진지합니다. 남양주에서 온 배교씨네 가족입니다. 엄마 강은영씨는 촬영 담당이고 아빠와 딸 그리고 8살 아들 건희가 올 겨울 김장을 맡았습니다. 무채를 다 쓸고 나면 마을 부녀회장님이 고춧가루와 마늘, 파, 갓 등 갖은 양념을 넣어줍니다. 모두 마을에서 농사지은 무농약 국산 재료이지요. 무채를 양념과 함께 잘 버무려서 김치 속을 만들고, 주민들이 전날 절여 놓은 배추를 가져다가 한 켜 한 켜 속을 넣어서 김치통에 차곡차곡 담으면 김장김치가 완성되지요.

#즐거운 겨울 축제
다른 테이블에서도 가족들이 배추에 김치 속을 넣느라 분주합니다. 이모와 사촌들과 함께 온 11살 영준이는 노란 속잎에 양념을 싸서 부지런히 제 입으로 가져갑니다. 평소에는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자기가 만든 김치라서 특별히 맛있다나요. 연방 김치를 먹는 영준이와 유하의 얼굴이 고춧가루 범벅입니다. 숙련된 솜씨로 김치 속을 넣는 주부도 보입니다. 매년 집에서 김장을 했는데 TV에서 수미마을의 김치체험을 보고 왔다는 주부는 중3 아들과 남편과 함께 김장을 담급니다. 배추가 특히 고소해서 올해 김장은 더 맛있을 것 같다며 활짝 웃습니다. 자상한 남편과 아들과 함께 한 추억까지 버무려져 그녀에게 올해 김장김치는 더욱 특별할 것 같습니다.

“3년째 김장체험을 하고 있는데요, 맛있고 편리하다고 매년 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전체 진행을 맡고 있는 최동분 총무님이 테이블을 둘러보면서 부족한 게 없는지 꼼꼼히 챙겨줍니다. 찬바람이 불어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김치 통에 김치가 채워질수록 마음은 더 든든해집니다. 어느덧 친해져서 김장을 마친 가족은 다른 가족을 도와주고 아이들은 양지바른 마당에서 잠바까지 벗고 잡기 놀이를 하며 뛰어놉니다. 그리고 드디어 점심시간,  금방 버무린 겉절이에 잘 삶아진 돼지고기를 얹어 먹으니 그 맛이 기가 막힙니다. 배도 그득하고 김치 통마다 김치도 그득하니 세상에 부러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김장은 힘들고 고된 일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즐기고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즐거운 축제입니다.

#수미마을의 겨울 이야기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마을을 둘러보았습니다. 개울가에는 갈대숲이 은빛으로 빛나고 물위에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립니다. 그리고 어디선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푸근한 냄새가 실려 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가니 마을체험위원장님이 불을 피워 밤을 굽고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밤을 구우며 어릴 적 추억에 잠기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불장난에 신이 납니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는 크리스티안이 한국친구와 함께 철망을 흔들며 밤을 구워봅니다. 난생처음 김장김치도 만들어서 먹어보고 장작불에 구운 군밤도 먹어보면서 그녀는 한국의 겨울을 어떻게 기억할까요. 구수한 연기가 새파랗게 얼은 하늘 위로 오래오래 퍼져갑니다.

흔들흔들 뗏목을 타고 갈대숲을 탐험하는 내내 겨울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듭니다. 세찬 바람에 갈대숲이 “부스스”하는 소리를 냅니다. 빈 들판에는 작은 볏가리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떨고 있고 바람이 불 때 마다 낙엽들이 무리지어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이 겨울날, 볼품없이 말라 비틀어가는 것들에게 자꾸만 마음이 갑니다. 한때는 푸르게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겠지요. 하지만 계절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이제는 미련없이 빈 몸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숙연해집니다. 그리고 제 할 일을 기꺼이 마쳤다는 당당함까지 느껴집니다.

이번에는 트랙터 마차를 타고 마을을 둘러봅니다. 트랙터 마차를 타고 덜컹덜컹 흔들리며 아이들도 어른들도 즐겁습니다.  특히 개울가를 건널 때에는 물살을 헤치고 바닥의 돌멩이들과 부딪히며 흔들리는 통에 아이들이 탄성을 지릅니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보다 더 재밌다나요. 김치를 맛있게 먹으면서도 도통 웃지 않던 영준이가 함성을 지르며 환하게 웃습니다. 돌아온 체험장에는 인절미가 준비되어있습니다. 인절미 떡메를 치고 인절미를 만들어 먹는 동안 하루 해가 설핏 기울어갑니다.

수미 마을에서 김장을 하고 또 겨울 체험을 하면서 겨울을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나뭇잎을 모두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는 저 나무처럼 겨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보고 묵상하는 때라는 것을.. 벗은 나무들 사이로 해가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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