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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픔을 딛고 시민의 품으로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4. 07:38

- 서울 용산가족공원

신록이 눈부신 5월의 공원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초봄의 여린 새순이 갓난아기를 닮았다면 싱그러운 5월의 신록은 공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꼭 닮았다. 아직 어리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나가는 그들은 모두 싱싱하고 활기차다. 가족과 함께 또는 유치원에서 소풍을 나온 아이들이 푸른 잔디밭에서 맘껏 뛰노는 모습은 연초록 신록과 오리가 노니는 연못과 함께 용산가족공원의 또 다른 풍경이다.

 

마침 소풍 철이라 평일에 찾아간 용산가족공원은 유치원 어린이들 차지였다. 연못 난간에 둘러서서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아이들, 30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대형벤치 위에서 단체 사진을 찍느라 제각각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 삼삼오오 짝지어 잔디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모처럼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보는 이의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하나같이 노란색, 주황색 등의 단체복을 입은 아이들은 신록이 눈부신 용산가족공원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국립박물관으로 연결된 오솔길을 따라가 보면 새로 지은 박물관 건물과 잘 꾸며진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에는 문화재인 석탑들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서 있다. 한창 공사 중인 아파트 건설 현장과 건너편 아파트 숲을 바라보는 석탑의 모습에서 아이러니를 느낀다. 마치 시골에 살던 노인이 서울에 올라와 아파트 뒷방에서 편치 않은 삶을 이어가는 듯 느껴지는 건 왜일까. 민족공원의 상징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전했다고 하지만 나는 왠지 고궁이 바라보이는 그전 장소가 더 마음에 든다.

용산 미군기지 골프장이 있던 곳에 조성된 용산가족공원은 넓은 잔디밭과 아름다운 연못으로 가족 단위로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편안한 쉼터 역할을 해오고 있다. 콘크리트 빌딩과 아파트 숲 그리고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행렬에 신음하는 복잡한 서울의 한복판에 있기 때문에 용산가족공원이 그나마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운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간간히 들려오는 헬기 소리와 공원에 둘러쳐진 담장, 그리고 그 너머로 보이는 낯선 미군시설이 이곳의 현실을 새삼 깨닫게 한다.

용산미군기지 하면 으레 그 높은 담장과 철조망이 떠오른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삭막한 담장을 바라보며 이유 없이 주눅 들던 느낌은 누구든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 한복판 용산땅은 고려 말 몽고 군대부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병참기지 그리고 현재의 주한미군에 이르기까지 외국군이 주둔해 온 땅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평화로운 가족공원 풍경이 내게 그렇게 평화롭게 느껴지지만은 않다. 용산가족공원은 주위를 둘러싼 미군기지에 의해 위축되고, 국립중앙박물관 건립으로 반 토막 나고, 주변에 끊임없이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 건설에 움츠려드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총 105만평에 이르는 용산주둔지는 서울대공원의 3배에 달하고 뉴욕 센트럴파크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선진국에서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도시공원이 들어선 자리에 우리나라에서는 외국군의 대규모 주둔지가 들어앉아 있다. 미군기지 이전협상 이후 용산미군기지를 돌려주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현재 전쟁기념관에 4만 5천 평, 용산가족공원에 10만 평이 먼저 반환되었고 2012년까지 나머지 86만평이 모두 반환될 예정이다. 정부는 돌려받은 용산미군기지 땅에 용산민족공원을 세울 계획이다.

넓은 잔디밭은 어린이 차지이다. 아기자기한 연못과 늘어진 수양버들이 한결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꿈 많은 어린이들의 놀이터, 가족 단위 도시민들의 편안한 쉼터인 가족공원은 아직 미완의 공원이다. 하지만 용산기지의 높은 담장이 허물어지고 철조망이 걷히는 그 날이 오면, 그래서 그 드넓은 땅이 푸르러지는 그 날이 오면  용산공원으로서 진정한 도심 속의 생태 공원으로 거듭날 것이다. 멀리 남산타워를 바라보며, 남산의 푸름이 용산의 숲과 함께 어우러져 한강으로 달음질치고, 북한산에서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이 되살아나 온 도시를 푸르게 덮을 그 날을 꿈꾸어본다.

찾아가는 길
넓은 잔디밭과 연못이 어우러지는 용산가족공원을 가려면 지하철 4호선 1호선 이촌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온다. 10분 정도 걸어가면 용산가족공원이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보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면 공원관리소(02-792-5661)에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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