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숲 본문

자료실/그린웨이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숲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4. 07:42

-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후원

오전의 햇살이 뜨겁다. 여름이 부쩍 빨라진 탓인지,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에 도심의 빌딩과 아스팔트가 이글거린다. 인위적인 냉방이 아니고는 이 더위를 어찌할 수 없는 도심의 한가운데. 그런 이곳에 울창한 녹음이 하늘을 가리고 상쾌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는 곳이 있다면 믿어질까. 게다가 고궁의 고풍스러운 멋과 자연을 벗 삼아 즐기던 선조들의 여유까지도 함께 느낄 수 있다면…….

 

자유 관람이 허용되는 목요일, 창덕궁을 찾았다. 돈화문을 지나 창덕궁에 들어서자 번잡한 도심에서 불과 몇 걸음 만에 타임머신을 타고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하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수령 600년 이상의 회화나무가 그렇고, 고궁이 주는 고아함과 한적함이 그러하다. 이곳에서 생활했을 왕과 신하들의 터전을 기웃거리면서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는 것도 복잡한 현대의 일상을 훌쩍 뛰어넘는 삶의 여유를 가져다준다.

 

학창시절에 고궁으로 소풍이라도 가면 장소는 안중에 없고 친구들과 놀 궁리만 했었는데, 금천교를 지나고 인정전을 지나면서도 내리쬐는 햇볕에 자꾸 그늘만 찾게 되는 것 또한 어쩔 수가 없다. 얼굴과 등줄기에 땀이 흘러내릴 정도가 되면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볼거리가 있다고 해도 시원한 그늘과 물가를 찾는 건 인지상정일게다.

 

그런데 후원으로 가는 입구부터 하늘을 가득 메운 아름드리 고목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태양의 열기가 이글거리는 콘크리트 회색 도시에 이토록 훌륭한 숲이 있었던가. 간간히 들려오는 차 소리만이 이곳이 도심 한가운데라는 사실을 일깨워줄 뿐,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가 가득한 숲에서는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고 곳곳에 자리 잡은 궁궐과 누각, 정자 등이 주변의 자연 풍광과 어우러져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서울의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조선의 별궁으로 가장 오랫동안 조선의 궁궐로 사용되었으며 조선시대 궁궐 가운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또한 산자락에 자리 잡은 건물과 정자가 산의 지형지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자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를 지닌다. 우리에게 비원으로 더 잘 알려진 창덕궁 후원은 자연의 순리를 중시하는 조선정원의 전형을 볼 수 있으며, 나무와 숲, 새들과 곤충의 서식지로서 생태적인 가치 또한 각별하다.

 

흰 연꽃이 피어있는 부용지에 울창한 숲과 부용정이 물 위로 비쳐 보인다. 연못과 정자와 숲이 어우러지고 연못 가운데 섬에는 어디에선가 날아온 왜가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이곳은 정녕 신선이 노니는 선경의 세계는 아닌지……. 연꽃을 사랑해서 애련지라고 이름 붙은 연못과 애련정을 지나 발길을 옮기자, 곳곳에 수백 년 된 아름드리나무가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는 듯 우람하게 서있다. 돌담의 담장기와 틈새로 파릇하게 피어나는 풀꽃도 정겨운 풍경이다. 건물이 자연과 오랜 세월 함께 하면서 자연의 일부가 되는 후원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는 듯하다.

 

일반관람에서는 볼 수 없었던 후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숲이 더욱 울창해진다. 반도지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 주변에도 거대한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강원도 어느 깊은 산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인공적인 관상수를 심지 않고 가지치기도 하지 않는 전통적인 원림 방식으로 조성된 후원 숲의 나무들은 자연의 힘으로 자란 나무 그대로의 모습이다. 비록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지만 자연의 힘으로 가꾸어진 숲이기에 수백 년인 흐른 지금에도 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옥류천의 소요암에는 바위에 살짝 물길을 내어 운치를 더하고 취한정, 초가지붕을 얹은 청의정 등의 정자 또한 소박한 자태로 살포시 앉아있다. 산을 깎고 뒤엎어 그 위에 눌러앉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연과 어우러지고 결국은 자연의 일부로 동화되는 것, 그것은 창덕궁 후원의 숲이 수백 년이 흘러도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이다. 옥류천에서 내려가는 오솔길, 하늘을 가득 메운 나뭇잎들이 6월의 햇살을 받으며 서로 다른 빛깔로 눈부시다. 도심 한가운데 숨어있는 후원에는 지금 여름이 한창이다.

 

찾아가는 길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창덕궁 후원숲의 아름다움을 느끼려면 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이나 3호선 안국역에서 내린다. 일반 관람은 안내원을 따라 함께 이동하며 매주 목요일에 한해 자유관람을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창덕궁 홈페이지 http://www.cdg.go.kr/를 참조하면 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