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으로 그린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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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사막의 오아시스

빛으로 그린 세상 2017. 6. 24. 14:55

-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눈 내리는 날, 여의도의 아침은 분주하다. 질척해진 눈을 피하기 위해 우산을 쓴 사람들이 서둘러 출근길을 재촉한다. 몇몇은 여의도 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가기도 한다. 빠른 걸음으로 공원을 지나는 사람들 곁으로 나무들은 말없이 눈을 맞고 서있고, 철쭉은 진분홍 꽃 대신 눈꽃을 피운다. 하얗게 눈이 쌓이는 벤치의 고즈넉한 모습 뒤로 늠름하게 서있는 고층빌딩에도 눈은 하염없이 흩날린다.

 

사람들이 한 차례 지나간 후, 공원에는 다시 한적함이 찾아온다. 산책하는 인근 주민들이 가끔씩 오갈 뿐, 눈 내리는 공원은 눈이 쌓인 가지를 요리조리 날아다니는 박새와 연못가에서 사이좋게 노니는 원앙 차지가 된다. 주렁주렁 달린 빨간 마가목 열매에도, 일송정 푸른 솔에도 연못과 냇가 그리고 팔각정 사이의 오솔길도 온통 하얀 눈이 쌓여 한겨울의 낭만적인 정취가 그득하다.

 

이곳이 27년간 검은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었던 여의도 광장이었다니 과연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드넓은 아스팔트에서 롤러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곤 했던 곳, 대규모의 정치집회가 열리거나, 선거 때면 구름떼처럼 모인 지지자들로 세력과시를 하던 곳, 그리고 그 이전에는 5.16 쿠데타군의 집결지로서 ‘5.16광장’이라고도 불렸던 이곳은 숲과 잔디, 물이 어우러진 도심 속 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흩뿌리던 눈발이 잦아들면서 산책로를 따라 조깅을 하는 사람, 서류가방을 들고 산책을 즐기는 사람, 한가하게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눈에 뜨이기 시작한다. 모두들 여유 있는 표정들이다. 1999년 2월에 개장된 여의도공원은 소나무와 연못과 팔각정이 어우러진 <한국 전통의 숲>, 넓은 잔디가 펼쳐지는 <잔디광장>,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거나 운동을 할 수 있는 <문화 마당>, 그리고 생태연못과 생태숲을 그대로 조성해놓은 <생태의 숲>으로 구성되어있다. 평일에는 인근 주민들이나 근처의 직장인들이 주로 이용하고 주말이면 많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찾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검은 아스팔트 대신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은 것이다.

 

한쪽으로는 증권가의 초고층 빌딩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고, 다른 쪽으로는 방송국 건물들과 멀리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증권가의 조급함과 긴박함이 넘치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의 분쟁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이곳 여의도에서 알싸한 겨울 공기를 마시며 산책로를 느긋하게 걷는 기분은 남다르다.

 

회색의 도시에서 마음마저 굳게 닫은 인간들이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 자연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무한한 기쁨과 평화를 주는지 잊고서, 스스로 마음의 여유도 포기한 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층 첨단 빌딩들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콘크리트에 갇혀 살게 되고, 서로의 이익만을 고집할수록 사람들의 가슴도 모래사막이 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의미에서 여의도 공원은 삭막한 도심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기도 하다.

 

대도시에서 경제라는 논리에 휘말려 정작 중요한 가치를 잃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의도공원은 자연의 속삭임을 들려주는 듯하다. 아침 출근길에 공원을 가로질러 가면서 하루하루가 다르게 계절이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벤치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으면서 풀내음을 맡고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때로는 사무실 안에서라도 창밖으로 공원의 나무와 숲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래도 행복한 건 아닐까.

 

다시 여의도 공원을 찾으면서 내친 김에 여의도 샛강 습지공원으로 향했다. 갈대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이곳이 여의도의 숨겨진 보물임을 실감한다.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노니는 오리 떼, 봄을 꿈꾸는 듯 잔뜩 부풀은 버들개지, 그리고 박주가리의 홀씨를 불고 있는 어린아이의 천진한 모습에서 여의도의 희망을 본다. 그리고 이것은 곧 서울의 희망이었다. 번화한 도심에서는 우리가 못 느낄 뿐 자연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우리는 자연 속의 한 존재이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찾아가는 길

삭막한 여의도의 오아시스인 여의도공원을 가려면 5호선 여의도역 3번 출구나 여의나루역 1번 출구에서 나온다. 도심에서 자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여의도샛강 습지공원은 지하철 5호선 여의도역 1번 출구로 나와 450미터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다.
문의:  여의도 공원관리사무소(02-761-4078) http:// parks.seoul.go.kr
       여의도샛강 생태공원(02-3780-0570)http://hangang.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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